편견과 선입견-연극 <온 더비트> <에쿠우스>
그 사람의 시간을 감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사람을 알아보는 일.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식하는 일.
그러나 감당은커녕, 그 시간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사람에 대해 몇 없는 정보들로 그 사람을 속단하고 미리 분류해 놓을 때면.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내가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 잠깐 편하고자 멋대로 선을 정해버리고 그 안에 그 사람을 욱여넣는 일. 나와는 다른 사람일 것이라며 섣부른 판단에 그 사람을 내던지는 일.
몇 번을 봐도 끝없이 부끄러워지는 공연이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끄집어내어 반추해보게 하는.
드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자폐아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온 더비트>와 7마리 말의 눈을 찔러 죽여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17세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에쿠우스>.
두 공연 모두 사회에서 '비정상'이라 분류된 이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보게 하고, 함께 공감하며, 이해해보게 한다.
그들의 세상이었던, 전부였던 드럼을, '에쿠우스'라는 자신만의 신을 빼앗으려 했을 때의 비참함. 그로 인해 들끓어 오르던 분노. 공연장을 나왔을 때 앞으로 있어질 그들의 남은 생애에 대한 처연함.
<온 더비트>의 '아드리앙'은 자신으로부터 드럼을 부숴버린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에쿠우스>의 '알란'은 자신의 신이라 여기던 말 앞에서 불경한 짓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여 말들의 눈을 찔러버린다. 자신의 신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기억하지 못하게.
그러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드리앙'과 '알란'을 그저 비정상으로 치부해 버리고 매몰차게 판단해 버리기에는, 나는 이제 알아버렸다. 그의 삶에서 드럼이 어떤 의미인지. 그에게 있어 '에쿠우스'라는 신이 어떤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나 또한 그 시간들을 함께 거닐며 온 마음으로 느껴버렸다. 그렇기에 더 이상 아무런 마음 없이 행위와 결과에 대해서만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안타까움이 남았고, 쓰린 감정이 남았다.
그러나 내가 과연, 그의 목소리로 그 시간을 짊어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들을 향해 잠시 멈춰 설 수라도 있었을까. 이해를 해보고, 같은 감정을 느끼며 애써볼 수 있었을까. 감히.
만일 내가 한 줄의 사건으로만 접했다면. 결코 축약될 수 없는 시간을 함부로 요약해 버린 이야기로 전해 들었다면.
내가 만들어낸 단면의 사람이 아닌.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나는 그들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내 안에 그들의 삶을 억지로 끼워 넣는 무책임한 행위 없이.
어떤 이에 대한 나의 섣부른 판단과 분류가 오히려 나의 눈을 가려 그 이를 볼 수 없게 만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생각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를 멀어지게 만든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그 얼굴을 온전히 맞대는 일은, 어쩌면 무지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