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 삶의 모양

뮤지컬 <이프덴(If Then)>

by 소소담

대학로에서 공연을 보고 늦은 저녁 즈음 집에 갈 때면, 나는 오래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곤 한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하고, 지하철보다 약 3-40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맨 뒤 창가 자리에서 방금 보고 온 공연을 곱씹으며 밤의 풍경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연을 통해 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직후에는 내 세상이 새삼 낯설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그 ‘낯섦’을 감각하는 일이 꽤나 즐겁다. 잠시 이 세상과, 나의 현실과 동떨어져 그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큰 것들이 작게 느껴지고 작다고 여겼던 것들이 크게 다가오곤 한다. 버겁다고 느꼈던 나의 고민이나 문제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이. 그럴 때면 ‘이대로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현실이 나아지고 변화된 것이 아님에도, 이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이 변화함으로 인해. 달라질 것 없는 상황인데도 나의 생각과 마음으로 삶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것을 느낄 때면 나는, 어느 겨울날 보고 온 한 공연을 생각한다. 삶의 모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 <이프덴>.


뮤지컬 <이프덴>은 뉴욕의 한 도시계획가 ‘엘리자베스’의 삶을 담고 있다. 이 인물이 어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가 만약 그때 이런 선택을 했다면’에 대한 결과를 각각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해 보곤 하는.

친구 ‘케이트’를 따라 밴드 공연을 보러 간 엘리자베스는 ‘리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조쉬’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반면 밴드 공연을 포기하고 대학원 동기인 '루카스'를 따라 시위를 나간 '엘리자베스'는 '베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연한 계기로 도시계획국의 부국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렇게 '리즈'의 삶은 사랑과 가정을 중심으로, '베스'의 삶은 커리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그녀의 주변 인물들의 삶도 달라지곤 하는데, 어떤 인물들은 큰 영향을 받는가 하면 어떤 인물들은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기도 한다. 여러 인물들의 삶을 모두 비중 있게 보여주는 이 공연은 한마디로 여러 사람들의 삶의 양상을 보여주는 극이다.


많은 이들의 삶을 보고, 특히 ‘엘리자베스’의 시간들을 함께 경험하고 나왔을 때 내 안에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남아 있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최선이라 생각하는 선택을 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을 한 아름 담아낸 탓인지 삶과 운명의 흐름 앞에서 조금의 무력감을 느꼈다. 우리는 우리 삶을 계획하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순간들에 그저 내맡겨지는 것일 뿐이니.

휘몰아치는 순간과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그것들을 담담히 맞이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나의 삶을 결정짓고 그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순간의 느낌, 감정’이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나의 커리어나 환경 같은 외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에 대해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삶의 순간들에서 느껴지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내 삶에 어떤 순간들이 도래할지 모르기에, 어떤 ‘결과’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닥쳐오는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감각하고 느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택할 수 있다.

<이프덴>에서의 ‘리즈’와 ‘베스’처럼.

그 한 번의 선택으로 닥쳐오는 수많은 순간들을 예측하고 선택할 수는 없지만 도시계획국의 부국장으로서,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서 어떤 신념으로 살아갈지,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로 자신의 생을 채워 나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삶도, 나의 세상도.

그렇기에 불가피한 운명들에 끊임없이 휘둘리고 휩싸임에도 나의 삶과 순간들은 여전히 나의 것이지 않나 싶다. 보여지고 닥쳐오는 운명이 결코 내 삶을, 삶의 모양을 결정해주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