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들의 삶

나의 시간과 순간들. 그를 향한 애정에 대해서. <베로니크 두아노>

by 소소담

공연의 가장 큰 특성이라 하면, '순간성'일 것이다.

시간에 따라 발생하고 소멸하는 시간예술.

같은 이름 아래 지어진 공연이라 하더라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공연은 세상에 유일무이하며,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의 예술.

나는 이 '순간적임'이 좋았다.

그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으며 그것이 존재하는 순간에 함께하고 있음에도 끝이 약속되어 있는.

사라짐이 있기에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이는 내가 잡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최선의 최선을 다해 누리고 오리라 매번 다짐하곤 했었다.

그 시간 안에 푹 잠기어 잠시 단절되는 기분을 느끼며 더할 것 없는 만족감을 누렸다. 이 순간을 소유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공연 후 잔재한 것이 내게 많지 않다 하더라도. 그저 그런 잠깐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도 옅어지고 희미해진 지금은, 내가 그때와 같은 것을 느끼고 감각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 같은 공연을 다시 보더라도 느껴지지 않는 그때의 정동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담아내고 다시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이 애달프다.

어떤 공연을 볼지 찾아보던 시간, 설렘과 귀찮음을 안고 떠난 공연을 보러 가던 길, 공연을 보고 나온 직후의 혼잡함과 여운, 벅차오름을 담아 향하던 집으로 가는 길.

이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그리워질 때면 나는, 내 모든 시간들을 오롯이 사랑했음을 느낀다.

붙잡아 둘 수도 없고, 금세 지나가버리고 마는. 모든 순간을.


몇 년 전, 한 무용수의 은퇴 공연을 영상으로 관람한 적이 있다. ‘베로니크 두아노’라는 무용수가 그간 무용수로서 참여했었던 작품들과 그녀가 사랑하고, 혹은 싫어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짤막하게 춤을 추는 공연 <베로니크 두아노>.

이 작품은 단순히 감상하고 지나가는 공연이라기보단 한 사람의 생애에 가까웠다.

끝내 이루지 못한, 그러나 그녀의 오랜 꿈이었던 ‘지젤’을 선보이기도 하고. 어떤 마음으로 각 작품에 참여했는지 고백하며 다시 그 역할을 연기하기도 하고.

그러다 그녀는 공연의 마지막으로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했던 <백조의 호수>를 온전히 선보인 후 퇴장한다.

그녀가 <백조의 호수>에서 맡았던 역할은 주인공이 아닌, 그 주인공을 받쳐주고 빛내줘야 했던 앙상블.

그 연기와 춤으로 자신의 은퇴공연의 마지막, 즉 무용수로서의 마지막 춤을 마무리한다.

과연 어느 누가, 자신의 마지막을 싫었던 순간으로 마무리하고 싶을까.

끔찍이 혐오하던 그 시간들을, 끝에 서 있는 지금의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마 이 또한 사랑이지 않을까.

한 사람의 생을, 더군다나 그 마지막을 함부로 생각하고 상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랑이 남았으니 기꺼이 마지막을 내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작품을 끝까지 지켜본 후 나는 나의 지난 삶을 되감아 보았다. ‘베로니크 두아노’, 그녀처럼.

당시의 감각이 선연한 순간들도 있고, 기억마저 조각난 순간들도 있다.

그 순간들을 말없이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처절하게 온 마음으로 느낀다.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모든 순간을 사랑했음을.

너무나도 아프고 치열했던 순간들도, 고통에 헤어 나오질 못했던 끔찍했던 시간들도. 결국엔 나의 시간들이기에. 나에게는 그마저도 소중함을.

당시의 고통과 힘듦을 부인하고 미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을 견뎌오고 버텨온 내가. 또 나의 삶이 있음에 행복함을.

행복은 결코 좋았던 순간들로만 모여진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되었던 순간들,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뒤섞여 만들어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