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킹키부츠>
길지 않은 인생에서 잠시 세상과 등을 졌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청춘의 때에.
세상에 기대하는 것도 많고, 꿈을 꾸고자 하는 열정도 넘쳐났던 시기.
그러나 이 시간들은, 그때의 세상은, 나에게 꿈과 열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껏 품었던 기대와 설렘은 늘 얼마 못 가 좌절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직 괜찮다고, 나는 그래도 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넘어져버린 꿈을 어떻게든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좌절하고. 실망하고.
이러한 반복이 되풀이되자 나는, 더 이상 열심을 내지 않았다.
온 열정 다해,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혹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될까 봐.
나는 내 꿈을 이룰 수 없는 사람으로 남을까 봐.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나'라는 사람이 내가 기대하고 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능력과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더 아팠다.
그럼에도 낮아지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기대와 기준들에 나는 나의 못난 모습과 행동들을 탓하며 자책감에 나를 끊임없이 가뒀다. 나는 그렇게 점점 나에 대한 사랑을 거두어갔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거슬렸고, 한심했고.
그렇게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 경멸과 원망은 점차 세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먼저는 내가 올바르게 서있질 못했으니.
그러던 중 날 찾아온 한 작품이 있었다.
어느 가을에 날 찾아와 준 뮤지컬 <킹키부츠>.
뮤지컬 <킹키부츠>는 ‘찰리’가 ‘롤라’를 만나 자신의 상처와 본모습을 알아가고 자기 자신을, 또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극 중 ‘롤라’는 자신이 복싱을 하길 원하는 아버지의 기대와 너무나도 다른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의 강요에 깊은 상처를 받고 아파하다가 끝내 아버지와 의절하며 자신이 원했던 모습, 드랙퀸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홀로 그 긴 시간을 견디고 지독하게 이겨낸 인물.
끊임없이 지속되는 강요와 고통 속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그 강요에 복종하며 자신을 없애보기도 하고, 남모르는 시간 속에 숨어 그 안에서만 자신을 표출해보기도 하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아픔에 그는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선택한다.
끔찍한 시간을 버텨내고 견뎌낸 결과는 화려한 드레스와 높은 하이힐을 신고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한때는 가장 원망스럽고 혐오스러웠을.
자신조차 인정해 줄 수 없었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세상이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롤라’는 다른 이들을 마주할 때에도 그들을 온전한 모습으로 바라봐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그대로 사랑해 준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에게 어떤 사랑을 주고 있는지.
이것들은 내가 세상을,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먼저는 내가 나를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줘야 다른 이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럴 수 없었고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나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 속을 지나며 나는 내게 덧씌워진 기대들을 하나씩 걷어냈고, 그 안에 숨겨져 있었던 모습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완전한 자의가 아닐지라도. 그저 어쩔 수 없었던 처절한 선택으로.
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증오했던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했기에. 살고 싶었기에.
극한의 고통에서 자신을 택했던 ‘롤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