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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Jan 02. 2020

#A1. 가족의 탄생

어쩌다 진흥아파트에 살게 되었을까?


중, 고등학교 사회책에 보면 안양을 베드타운(Bed Town) 중 한 곳으로 소개한다. 서울 강남, 강서로 나가는데 교통이 용이하고, 20년 전 평촌신도시가 대규모로 거주지로 들어서면서 학원가, 먹자골목, 쇼핑센터, 대중교통, 고속도로, 생활문화공간 등 인프라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안양시에서 조사한 주거 형태에 분포 현황에 따르면 아파트 주거 형태가 60.3%(2018년 기준)로 절반 이상이다. 90년대 초반 신혼부부와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이사를 와서 탄생한 가정이 많고, 그 덕분에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직장인들은 당시 서울보다는 합리적인 집값때문에 자가용, 대중교통으로 30분에서 1시간 이상 매일 출퇴근을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안양으로 왔을 것이다


<안양1동 진흥아파트>는 부모님의 신혼집이자 나와 동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집, 고향이다.

안양1동의 진흥아파트는 1~27동까지 5층 건물의 저층부 단지, 121~127동까지 12층 건물의 고층부 단지가 함께 있다. 부모님은 저층부 11동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안양1동 진흥아파트 11동 3,4호 입구
안양1동 진흥아파트 11동 403호, 재건축 이주기간의 모습


원래 셋째 큰아버지가 진흥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넷째인 아버지가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형이 있는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에 큰외삼촌도 결혼 후 집을 알아보시다가 진흥아파트에 정착하셨다. 내 기억엔 없지만 큰외삼촌과 큰외숙모가 맞벌이를 하셨어서 사촌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밥도 먹고 놀다 갔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11동에는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0~10세 미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많았고, 덕분에 아이들은 신나서 이집 저집 놀러 다니면서 점심 먹고, 비디오 보고, 간식 먹고, 저녁 먹고, 주차장을 뛰어다니면서 다 같이 컸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또래 친구들이랑 해질때까지 밖에서 놀던 기억이 전부다.


세월이 흐르고, 안양주변에 아파트단지와 신도시가 생기면서 셋째 큰아버지는 평촌신도시로, 큰외삼촌은 산본신도시로 떠났다. 11동에서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도 주변에 새로 지은 래미안, 롯데캐슬, e편한세상, 푸르지오 아파트로 하나, 둘 떠났다. 우리 가족은 내가 8살 때 11동을 떠났는데, 그래봤자 같은 단지내 걸어서 3분 거리인 127동으로 이사를 했다.


나에게 진흥아파트는 태어나고 자란곳이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모든 기억의 배경이자 든든한 고향이다. 그래서 이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게 너무 아쉽다.

가끔 어린 시절 사진을 모아둔 앨범을 펼쳐본다. 거기엔 11동 주차장에서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7살의 나,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3살의 내가 있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저층단지 은행나무 가로수길에서 손잡고 우애를 뽐내는 나와 내 동생도 있다. 부모님의 행복했던 시절도 남아있으리라.


<안양1동 진흥아파트> 11동은 우리 가족이 탄생하고, 한 가정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준 고마운 곳이다.

안양1동 진흥아파트, 11동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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