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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Jan 28. 2020

#A2. 1997년, 엄마의 뒷모습

그 겨울, 혹독한 운전면허 도전기

겨울 이맘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즈음 유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97년,  창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당시 진흥아파트 저층부 4층에 살았었는데 함박눈이 내릴 때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슬로모션으로 바뀐다.

눈송이는 천천히 공중에서 나풀거리다 나뭇가지에 내려앉고, 요란하지 않게 땅에 착지한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 경비실 지붕, 공동 현관 옆 작은 텃밭, 베란다 창 밖에 올려놓은 화분위가 하얀색으로 뒤덮인다. 나는 거실에 앉아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눈 내리던  날, 저층부 경비실 앞 화단


그와 상반되게 집안은 긴장감 가득한 정적이 흐른다. 시계 초침이 째깎째깎 넘어가는 소리,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만이 공기 중에 가득하다. 쎄하다. 이윽고 내 시야에 들어온 한 사람!  엄마다.

부엌 옆 식탁 앞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엄마의 뒷모습.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기필코 해내겠다는 의지. 난방도 필요없다.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현장.


대한민국에 운전면허시험이 도입되고 가장 어려웠다는 1997년. 엄마는 하늘의 별 따기 보다 어렵다는 그 운전면허증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당시 뉴스를 보니 경찰청 교통기획 과장이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

"국민들의 민원사항과 교통경찰관들의 현장 경험을 이번 개정안에 반영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제 본격적인 선진 자동차 문화권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운전면허시험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난도다. 필기2번, 실기2번. 4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필기에는 정답일 확률이 50%인 O/X  시험이 있었고, 실기는 장내시험에서 T자 코스 S자 코스 주차 등을 완벽하게 통과해야 도로 주행을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험 비용으로 무려 약 100만 원이 필요했다고!

97년도에 100만 원인걸 고려하면 엄마는 정말 간절하게 한번에 합격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집중하셨을 거다. 그때 본 엄마의 뒷모습은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매년 겨울, 눈이 내리는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이다.

눈 내리던 날, 고층부 127동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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