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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엄마의 11월 첫 번째 토요일

by 김수다

오늘은 무지개 모임이 있는 토요일이다. ‘무지개’는 인천-경기 지역의 슬기로운 초등생활 3기 브런치작가 모임의 이름이다. 벌써 1년, 3개월마다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매달 같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나눈다. 이번 모임은 지난번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뤄졌던 4번째 정기모임이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다는 이유로 전업맘이 되었던 나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좋은 엄마의 기준과 노력은 다양하겠지만, 책을 통해 그 방향을 잘 잡아가고 싶었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책, 저명한 육아전문가의 책, 제목이 와닿는 책.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마음과 생각을 다듬고 다듬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책이 이은경선생님의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였다. 사실 큰 감동이나 깨달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은경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에 검색을 하다 우연히 ‘슬기로운 초등생활 3기 모집’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엄마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슬기로운 초등생활이 뭔지도 모르면서 ‘작가로 만들어준다’는 말에 혹해서 ‘슬초 3기’가 되었다.


170여명의 슬초 3기 내에 크고 작은 소모임이 만들어졌고 나는 지역 모임에 가입을 했다. 살고 있는 지역이 가까울 뿐이지 서로의 나이도 실명도 잘 모른 채로 그렇게 인연을 시작했다.


2024년 12월 14일 동인천의 어느 북카페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도서관 사서이신 작가님, 이미 독서모임 활동을 오래 하셨던 작가님, 교육기관을 운영하시는 작가님까지. 다들 독서와 작문이 취미라서 그런가, 옷차림은 수수해도 나긋한 목소리와 온화한 표정, 말투에는 기품이 느껴졌다. 뼛속까지 이과적 성향, 극단적인 사고형-판단형인 내가 이런 분들과 함께 할만한 자격이 있나 싶었다. 사실 내 주위에는 나 같은 사람만 있어서 그동안 내가 제일 독서광인 줄 알았는데 나는 그저 평범한 주책바가지 아줌마였다.



그렇게 어색하면서도 위축감이 느껴졌던 첫 모임. 벌써 1년이 지났다.

이제 겨우 3번, 오늘이 4번째 만나는 사이들인데 얼굴을 잘도 기억하는 게 신기하다. 서로의 브런치 글만 읽었을 뿐인데 다 안다는 것처럼 안부를 묻고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며 웃는다. 단체 카톡방이 있지만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지도 않는데 어깨를 도닥이며 맞아, 맞아, 그래, 그래 그러는 사이가 되었다.


나의 과거를 고백하지 않아도, 나를 모두 드러내지 않아도, 그저 읽고 쓰는 일만 함께 해도 충분한 사이라는 게 편하다.

소속을 강요하지도 않고, 읽고 쓰지 못한다고 해도 비난하지 않으면서 별별 사는 얘기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게 즐겁다.


오늘의 모임은 어떨까. 언제 이렇게 나뭇잎이 알록달록 변신했는지. 길가의 나무들이 마치 밝은 대낮의 불꽃놀이처럼 보인다.

첫 모임, 한껏 뽐 좀 내볼까 이 옷 저 옷 꺼내보다가 너무 추워 결국 기모 고무줄바지에 패딩점퍼를 입고 갔던 그날이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무지개 작가님들의 안색이 지난번 보다 더 밝았으면, 우리의 대화가 알차면서도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의 흥청망청 실체가 드러나더라도 오늘이 재밌었으면 한다.


어쩌다 이 모임의 이름이 ‘무지개’가 되었을까.

비가 지나가야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처럼, 나를 잃고 헤맸던 시기를 무사히 보내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빛을 드러낸 게 아닐까.

다른 색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빛으로부터 시작된 무지개처럼, 각자의 결을 간직하지만 우리의 시작에는 책이 있었다.

오래 머무르지 않아 소중한 무지개처럼, 잠깐의 만남에도 진한 위로를 받기를 바라본다.


언제라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다정한 모임이 되었으면.

그리고 이렇게 나누는 시간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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