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자느라 바빴다.
언젠가 남편과 단둘이 꼬치주점에서 데이트를 할 때, 이런 광고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영원히 아빠만 바라볼 거라 믿었던, 가끔 우동과 꼬치를 함께 먹으며 웃어주던 딸이 사춘기가 되면서 아빠를 멀리한다. 가끔은 아빠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마음이 헛헛하던 어느 날, 딸에게 문자가 온다.
‘아빠 퇴근했어?’
‘집에 가는 길... 딸은?’
‘배고파.’
아빠와 딸은 오랜만에 우동과 꼬치를 먹으며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남편과 나는 우리 딸도 이런 시간을 보낼 날이 곧 오겠지,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며칠 후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이 광고 얘기를 꺼냈다.
“할로, 할로도 이제 조금 더 크면 아빠 안아주지도 않고 귀찮아하고 아빠랑 놀지도 않고 그러겠지? 사춘기가 오면 말이야. 사춘기가 오면 아빠를 멀리하고 그런다던데. ”
할로는 입을 틀어막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엄마, 아직 몰랐어? 나 이미 그러고 있는데?”
“우리 큰 애는 잠만 자느라 사춘기도 없었어요!”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중학교 성적표 학부모의견란에는 ‘집에서 공부도 안 하고 잠만 잡니다. 혼내주세요’라고 쓰여있었다. 잠을 많이 자긴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럴 용기도 없었고, 나보다 더 유난스럽게 사춘기를 겪는 동생 덕에 나는 사춘기를 잠재울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있다. 나는 사춘기를 아프게 겪었지만 나의 부모는 나에게 사춘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근무가 끝나고 다른 원장님과 아이들의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누었다. 이미 아이들이 20대 중반을 넘긴, 선배엄마인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애들은, 엄마가 너무 바빠서 사춘기여도 엄마가 챙겨주지 못한다는 걸 진작 알았거든. 그래서 우리 애들은 사춘기가 없었어. 그리고 우리 가족들이 모두 너희들은 사춘기도 없이 늘 이렇게 곱고 예쁘게 잘 자랄 거야,라고 어렸을 때부터 늘상 말해줬더니 진짜 그렇게 크더라고요. 우리 집안에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은 애가 없었어요.”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할로에게 말했다.
“오늘 엄마가 원장님이랑 얘기를 하는데, 원장님은 스무 살도 훨씬 넘은 딸, 아들이 하나씩 있으시거든. 근데 애들이 사춘기가 없었대.
세상에는 사춘기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야. 엄마도 사춘기가 없었잖아. 그치?
왠지 엄마 생각에 우리 할로도 사춘기가 없을 것 같아.
우리 할로도 평생 지금처럼 엄마랑 부비부비하고 사랑해, 하면서 사이좋게 클 거 같아. 할로 생각은 어때? 할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엄마.”
할로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사춘기가 없다는 거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 없다는 거야. 그런 과정도 거치고 이겨내야 어른이 되는 거잖아.
엄마는 내가 어른이 안 됐으면 좋겠어? 나는 그런 과정도 다 거치고 어른이 될 건데?”
“그래? 근데 사춘기가 없이 평온하게 어른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거지. 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할로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을 것 같아? 엄마랑 자주 싸우고 엄마한테 짜증 내고 문도 쾅쾅 닫고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어. 나도 조금은 그럴 거 같아.
근데 내가 그런다고 해서 엄마의 딸이 아닌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이 아이는,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넘친다.
사춘기.
나는 지레 겁먹고 있었나 보다. 그 시기가, 엄마 혼자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시기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성숙의 시기라는 것을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걱정이 앞서 있었다. 어쩌면, 나 없이도 이 아이 스스로 단단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두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날도, 또 멀어지는 날도,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이유로 서로의 눈치를 보고 답답해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딸, 우리 딸의 내일을, 사춘기를, 20살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모든 순간을 항상 기대한다. 그 언제라도 어김없이 빛나는 나의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