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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의 기수시기, 그리고 생계형 운전자

내용이 좀 많지만, 차근차근 읽을 수 있을거에요.

by Kevin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음주운전이 무엇인지는 이제 알겠는데, 그럼 언제부터가 음주운전일까요?

차에 타면 음주운전일까요? 아니면 시동을 걸었을 때?

오늘은 기수시기에 대해 알아보고, 생계형 운전자의 구제 방안에 대해서도 읽어봅시다.


1. 음주운전의 기수시기

언제가 기수시기일까요?

"기수시기"라고 부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전에는 기수시기를 "어떠한 행위가 범죄의 구성 요건으로 완전히 성립하는 시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범죄행위를 마쳐 그 범죄 결과가 발생한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수의 반대되는 단어는 미수가 있는데요, 미수는 여러분이 비교적 자주 들어서 익숙한 단어일거에요.

"범죄가 미수에 그쳤다."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지요?


자, 그렇다면 음주운전의 기수시기는 언제일까요?

대법원의 판례와 통설을 기준으로 한다면 "발진조작완료설"을 따라야 합니다. 이는 발진 준비를 위한 모든 행위를 마치면 실질적인 움직임이 없어도 운전의 기수가 성립되었다고 보는 학설입니다.

"발진조작완료"에 대한 내용을 쉽게 풀이해볼까요?

쉽게 말해 음주상태(0.03% 이상)의 운전자가 차량에 탑승해 시동을 걸고 주차브레이크를 해제 후 기어를 D단으로 체결한 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는 등 발진 단계에 이르러 자동차가 움직인 때를 음주운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기수시기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차량이 움직였다고 무조건 음주운전으로 보는건 아니랍니다.

단순히 엔진의 시동만을 건 경우

운전자의 의지나 관여 없이 기어 등 자동차의 발진에 필요한 장치가 작동하거나 실수로 건드려 원동기의 추진력에 의해 자동차가 움직인 경우

불안정한 주차 상태, 혹은 도로 여건 등으로 인해 자동차가 움직인 경우

등 어느정도 운전자의 의지와 고의성이 있어야 음주운전의 기수로 보고 있습니다.

기타 법원의 판례를 볼까요?

음주자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차량의 시동을 걸고 P단 기어를 체결한 상태에서 히터를 작동하던 중, 주변을 통행하던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에 의해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법원이 청구를 기각함

음주자가 차량에 탑승해 기어를 D단에 체결하고 가속페달까지 조작하였으나, 차량이 파손되어 실제적인 움직임이 없었던 경우

특히,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17도10815 판결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에 따르면 발진조작이 완료되었어도 자동차의 고장이나 결함 등으로 애초에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면 발진할 수 없는 상태로 보아 발진조작을 완료했다고 보지 않는 판례가 존재합니다.


2. 생계형 운전자의 면허정지 및 취소

운전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다양하죠. 출퇴근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대중교통이 불편하거나, 개인적인 공간이 좋아서 등 여러 이유를 가지고 오늘도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운전이 곧 직업이거나, 혹은 직업과 아주 밀접해 필수불가결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죠.

택시 운전사, 택배 배송원, 배달대행업자, 출장 점검 및 수리업자, 트럭 물류 수송원 등 수없이 많은 직업이 운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된다면 생업을 잃게 되어 앞으로 살아갈 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게 되겠죠. 그럼 이런 사람들은 음주운전으로 인해 행정처분을 받은 뒤에는 그냥 앉아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요?


가. 운전면허 정지/취소처분 등에 대한 이의신청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는 절차는 바로 "이의신청"입니다. 이 절차는 면허정지 혹은 취소 등 행정처분을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신청할 수 있지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관할 경찰청장이 신청 대상자이며, 통상적으로 경찰청 종합민원실에서 접수하거나 우편으로 발송하게 됩니다.


이의신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다음 각 항의 사람들이 가장 확률이 높습니다.

운전이 가족 및 본인의 생계 수단인 경우

모범운전자로서 3년 이상 교통봉사활동에 종사한 경우

경찰서장 이상의 표창을 받은 경우

위 사항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이의신청을 접수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구제 확률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은 감수해야 할 사항이지요.


아래에서 설명할 조건은 강제조건으로, 아래 항목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될 경우 이의신청을 통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1% 이상의 수치로 단속된 경우

음주운전 중 인적피해를 동반한 교통사고를 유발한 경우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 도주, 혹은 경찰관을 폭행한 경우

과고 5년 이내 3회 이상의 인적피해 교통사고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경우

과거 5년 이내 음주운전 이력이 있는 경우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다음과 같이 처분이 감경됩니다.

면허취소 -> 면허정지 110일

면허정지 -> 정지기간의 1/2 감경

만약 본인이 생계형 운전자이거나, 혹은 운전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반드시 이의신청을 통해 구제받는게 좋겠죠?

기억하세요, 60일이 지나면 이의신청을 접수할 수 없답니다.


나. 행정심판

이의신청 접수 기간을 도과하거나 요건에 맞지 않아 구제를 받지 못했거나, 혹은 신청했음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두 번째 절차로 행정심판이 있습니다.


행정심판이 무엇일까요?

행정청의 위법 및 부당한 처분등으로 권리나 이익을 침해받은 국민이 신속하고 간편하게 법적으로 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행정심판은 행정소송에 비해 간단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요.

게다가행정심판에서 내려진 결정은 행정기관을 구속하는 강력한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만약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싶지만 법률대리인을 선임할 수 없을 경우 국선대리인의 조력이 제공되기도 하지요.


사실, 행정심판은 필수적인 절차는 아닙니다. 행정심판을 건너뛰고 바로 행정소송을 통한 구제도 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아래 설명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행정심판을 거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 및 기타 불이익 처분

각종 세법상의 처분

노동위원회의 결정

토지수용에 대한 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

자동차운전면허취소처분 등 도로교통법상의 처분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도로교통법상의 처분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는 주제에 해당되겠죠?

이 제도를 "행정심판전치주의"라고 합니다. 무효등 확인소송을 제외한 취소소송 및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행정심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제도입니다.

다만, 행정심판청구를 한 날로부터 60일이 지나도 재결이 없는 등 법령에서 규정하는 사항에 해당한다면 행정심판 재결 없이 곧바로 행정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행정심판의 진행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청구인이 위원회 또는 피청구인에게 행정심판청구서 제출

1-1. 위원회는 청구서 접수 후 피청구인에게 청구서 부본 송부 및 답변서 제출 요청

1-2. 피청구인은 청구서 접수

2. 피청구인은 답변서 작성 및 위원회에 청구서 원본과 답변서를 제출

3. 위원회가 청구인에게 답변서 부본 송부

4. 위원회는 사건 검토 후 안건 상정 및 청구인과 피청구인에게 심리기일 통보

5. 행정심판위원회를 개최하여 심리 침 의결 후 재결서를 작성

6. 위원회가 청구인과 피청구인에게 재결서 송부


위 절차는 60일 ~ 90일 이내에 마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안이 매우 중대하고 복잡한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신속한 권리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최근에는 서면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행정심판을 신청하고 진행할 수 있으며, 정식 재판에 비해 속도가 빠르고 비용이 들지 않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는 제도입니다.


다. 행정소송

행정심판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이젠 어떤 방법이 남았을까요?

앞서 말한 것 처럼 행정소송이 남아있습니다.

행정소송은 법원에서 진행되며, 법률적 다툼과 검토가 필요해 법률대리인의 조력이 필요한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우선, 행정소송이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 그 밖의 공권력 행사 혹은 불행사 등으로 인한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구제하고 공법상의 권리관계 또는 법의 적용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절차

처분 등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처분 등이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신청


행정소송의 종류는 여럿 있지만, 우리는 음주운전의 권리구제에 대해 알아보고 있으니 가장 연관있는 항고소송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취소소송 : 항고소송의 대표적인 형태.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 또는 재결의 취소 또는 변경을 구하는 소송

ex) 지방세부과처분취소, 건축허가반려처분취소, 운전면허취소처분취소 등

2. 무효등 확인소송 : 행정청의 처분이나 재결의 효력유무 또는 그 존재여부를 확인하는 소송

ex) 고시처분무효확인, 공원지정처분무효확인 등

3. 부작위 위법확인소송 : 행정청의 부작위가 위법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소송


취소소송은 앞서 말한 것 처럼 90일의 불변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효등 확인소송은 별다른 불변기간을 두고 있지 않은데요.

따라서 불변기간을 도과한 사람들은 취소소송 대신 무효등 확인소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만, 무효소송은 그 확률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겠네요.


3. 그럼 행정소송 왜 해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비교해봅시다.

행정심판은 비용도 안들고, 시간도 짧고, 절차도 간단하고, 국선변호인도 붙습니다.

이에 반해 행정소송은 비용은 비용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법률대리인도 구해서 복잡한 절차를 수행해야 하지요.

이정도만 보면 도대체 행정소송은 뭐 하나 이쁜 구석이 없는 절차로 보입니다.

그럼 왜 행정소송을 하는걸까요?

행정심판은 동급의 ‘행정청’에서 진행하는 절차이고, 행정소송은 ‘법원’이라는 사법부에서 진행하는 절차입니다.

면허정지나 취소처분은 경찰공무원이 근무하는 경찰서 혹은 경찰청을 통해 내려지는 결과이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행정심판과 같이 경찰과 동급의 행정청에서 사건을 판단하게 되면 아무래도 경찰공무원의 입장을 더 많이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법부는 삼권분립에 의해 분리된 독립적인 다른 기관이고, 법원은 더 정확하고 자세한 법리적인 판단을 제공합니다. 경찰과는 별개의 기관이기 때문에 속칭 ‘제 식구 감싸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법리적 요인과 증거에 입각하여 조금 더 엄격하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죠.


음주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당해도, 여러가지 양형사유에 의해 선처될 수 있고, 이후에 다른 행정적 처분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 초범이거나 낮은 알코올농도, 사고 후 조치 여부 등에 대해 양형이 결정되니 두려워하지 말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고 이후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며 이런 행정절차를 동반한다면 효과가 극대화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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