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빛
이젠 고전이 된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와 전쟁을 하게 된 인간은 태양을 차단한다. 기계들의 에너지 공급을 막기 위해서 지구의 하늘을 시커먼 인공 구름으로 덮어 버리는 악수를 두나 결국 전쟁에 패한다. 전쟁에 승리한 기계들은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태양 에너지 대신 태양을 막아 버린, 이제 그들의 노예가 된 인간의 생명에너지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충족한다. 주인을 넘어선 영악함을 지니게 된 기계는 메트릭스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단순히 인간의 육체 에너지 단백질 덩어리뿐만이 아닌 정신세계까지 지배해 인간들의 총체적인 생명 에너지를 빼앗게 되는 것이다. 기계는 다시 하늘을 청소해 태양을 보지 않는다. 어쩌면 정말 태양을 가리고 싶었던 것은 기계였는지도 모른다.
실제의 몸은 기계에게 에너지원으로 제공해 주는 대신 인간들은 `매트릭스'라는 가상공간에서 생로병사를 느끼며 마치 현실을 사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가상공간에서 환희를 느끼며 생명에너지를 발산하며 스스로 빛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기계들의 동력을 위한 땔감이 되는 것 일뿐... 하지만 매트릭스 안에만 있으면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굳이 현실을 깨달아서, 자신이 겨우 땔감이란 걸 깨달아서 어쩔 것인가? 매트릭스 안에서도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다. 왜 싸우려 하는가?
빛이 아닌 빚
지금 내가 속해 있는 (매트릭스) 시스템의 기본 소스 중 하나는 `땅'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받는 내 직장 동료들 중 가정을 꾸린 대부분은 빚이 있다. 씀씀이가 알뜰한데도 집 마련엔 달리 방법이 없다. 모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수입의 상당량을 세금을 내듯이 `주택' 이란 그 형이하학 적인 가치에 빼앗기고 있다. 옛날에 한 식구들의 입을 책임질 수 있다는 한 사람의 장정의 노동력은 이제 이 `땅' 이란 것 앞에 너무도 무력하다.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에는 누군가의 도장이 찍혀 있고 그 가격은 나의 벌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시스템의 거대한 세력이 누구인가 알 수 없으며 알고 싶지도 않고 편입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의 생명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살아 있을 뿐이며 나의 에너지 플러그를 누군가 뽑아 줄 때까지 그저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모험을 할 뿐이다. 이 (매트릭스) 시스템의 대다수 모두 빚을 지고 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래야 모두에게 처절하리만큼 생체에너지를 짜 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혐오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지는 오래다. 이미 `연료'로 전락하게 되어 기계들에게 만이 아닌 인간 자신들의 생명의 젖줄이었던 태양을 가린 죗값을, 그 빚을 갚아 나가게 된다. 결국 구세주 네오도 시온 도 매트릭스의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파생된 하나의 `희생양'이었을 뿐이었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보려 하는 그 희망 그 자체가 매트릭스를 더욱 견고히 하게 하는 보완 프로그램이 되는 너무도 완벽한 시스템. 희망을 잃은 인간들은 급기야 그런 스스로를 서로 혐오하기에 이른다. 가진 자는 없는 자를 혐오하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남자는 여자를, 노인과 젊은이는 서로 혐오하기 시작한다. 극우와 소외계층이 결탁하고 진보와 이상이 핵융합을 하여 권력의 프로그래밍과 부(富)의 숫자 놀음에 더욱 자신들을 옥죄며 머리 뒤에 있는 에너지 플러그를 다시 깊이 꽂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