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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그림 #36

추락

by 다자녀 디자이너

얼마 전 동명의 영화가 화두가 되면서 나는 오히려 작가의 유명세에도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웹툰 '인천 상륙작전'을 정독하게 됐다. 첫 회를 보는 순간부터 역시 기대했던 윤태호 작가의 필체와 탄탄한 구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슬픈 우리 근대사의 적나라한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교과서에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던 광복 이후부터 6.25 동란까지의 역사, 그때 벌어졌던 혼란, 언급되지 않는 우리 민족의 패배감, 비굴함, 참을 수 없이 가볍던 존재감에 대해 작가는 담담하게 자술서를 쓰듯 그려내고 써 내려갔다. 물론 개인의 시각과 편견의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객관적 사실을 발췌한 역사 서적의 명시를 잊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빨이니 아니니 댓글들이 무성하다.


적은 '추락' 했지만 우리는 승자가 될 수 없었다.1945.08.15.

우리는 나라를 잃었었다.

그렇게 살다가 연합군의 승리로 일제가 멸망하면서 해방이 됐다. 해방은 됐는데 이 땅은 여전히 우리가 주인이 아니었다. 주인을 가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혼돈 속에 죽어나갔고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만화는 격동의 시대사를 훑고 내려가면서도 결코 이 모든 것이 먹고살아 남는 문제와 동떨어지지 않도록 절묘하게 엮어 놓았다. 먹고사는 것은 힘들고 그래서 서글프다.


일제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미군이 6.25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이 국력이 강했더라면,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중국을 압도했더라면,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어떤 가정을 하더라도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린 지금 잘 먹고살고 있는가?


동명의 영화도 윤태호의 웹툰도 들여다보면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우린 잘 먹고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고, 불만투성이의 이 현실도 결국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닌 엄청난 희생의 대가라는 걸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근대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우린 너무 모르는 듯 지낸다. 작가가 담고 싶은 얘기는 어려웠던 과거를 잊지 말자는 것도 있겠지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똑바로 알자 라는 것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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