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 큰 나무의 미혜 Mar 07. 2021

아무거나 엄마 하고 싶은 거 해!

예솔의 말



 이상하게 나라는 사람에게 계속 실망하는 일들만 생겼던 나날이었다. 반복되는 수치심에 어찌나 스스로가 한심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울컥 복받쳤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40년을 살아도 왜 나는 이 모양인지, 왜 아직도 사람이 불편해서 솔직하지 못한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지, 점점 머릿속에 무거운 안개가 짙어졌고 자기혐오와 피곤함이 겹쳐 날이 바짝 섰다. 누군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날이 섰다. 마음은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어서 언젠가 분명히 돌려받을 상처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짝 선 날이 쉬이 무뎌지지 않았다. 이 쌓이는 마음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걸까? 울고 싶은 걸까? 화를 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하루 정도 말없이 혼자 있고 싶은 걸까? 그런데 멍하니 혼자 있을 시간도 없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할 수나 있을까? 또 그저 시간이 흘러 마음이 무뎌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날은 오전에 내 온라인 수업이 있어서 2시간을 아이들끼리 놀았다. 아침밥과 점심밥 먹은 설거짓거리가 쌓여있지만, 아이들과 놀아줘야 할 것 같아서 조금 장난스럽게 물었는데 생각지 못한 예솔의 대답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너 하고 싶은 거 해!’ 아이를 낳고 간절히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던 말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엄마 역할만 강요받았었는데 오히려 일곱 살 된 딸이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라며 날개를 달아주려 했다. 예솔이 크면서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줄 때면 좋은 친구를 낳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마치 엄마처럼 말하는 아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대고 싶었다. 그래도 설거지를 쌓아둘 수 없는 엄마이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예솔이 그림 그리던 펜을 내려놓고 졸졸 따라와 “엄마 도와줄까?” 묻는다. 괜찮다는 말에 설거지하는 엄마 앞에서 힘내라는 듯 해맑게 웃으며 열심히 춤을 추는데 신기하게도 그동안 머릿속에 무겁게 낀 안개가 걷혔다. 거친 가시 가득 돋아난 내게 밝고 건강한 면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낳은 저 아이였다. 아이들은 나를 다시 밝고 건강한 엄마로 만드는 놀라운 존재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이 불어야 풀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