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 큰 나무의 미혜 May 13. 2022

하기 싫은 숙제


 이번 주 에세이 숙제는 ‘당신의 인생을 적어주세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주제와 함께 5문장 정도의 예문을 보여주셨지만, 왠지 이번에는 글을 적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힘겹게 돌이켜보면 나는 늘 마음속 깊은 보랏빛 우물에 잠겨있었다. 그렇게 눈물로 가득 찬 선인장이 되어 온몸에 사나운 가시를 세웠다. 가시는 수많은 인연의 끈을 잘랐고 자신에게도 파고들어 상처를 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고슴도치 엄마처럼 뾰족한 가시 때문에 온 마음으로 아이를 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게 돋아난 가시를 잘라내기 위해 쉼 없이 마음을 공부했다. 내 절실함은 단 하나였다. 아이가 나처럼 되지 않기를….


 처음 불안할 만큼 작디작은 몸으로 뜨겁게 뛰는 생명을 안았을 때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되는지 궁금했었다. 내가 고팠던 관심과 사랑을 주려 집착했고 그래서 내가 지워지던 시간도 있었다. 육아를 공부하면서 무조건 주는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은 서로에게 잘 독립하기 위해 나날이 밑 빠진 독 같은 마음을 채우려 애쓴다. 언젠가 아이들이 맨발로 걸어갈 차가운 아스팔트 도시에 늘 같은 자리에 있는 키 큰 나무가 되고 싶어서다.


 아무튼 내가 포기하지 않은 잔잔한 오늘이 너무나도 애틋해서 지나간 인생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무 일 없을 오늘의 인생을 담백하게 끄적이며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떨어지는 꽃잎을 다 잡을 수는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