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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Apr 27. 2022

떨어지는 꽃잎을 다 잡을 수는 없어


 이번에는 에세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공항 사진을 보여 주시며 10문장 정도의 글을 써보자고 하셨다. 문뜩 처음 인천공항에 갔었던 어리숙한 20대의 내가 떠올랐지만, 이상하게 어떠한 단어조차 쓰이지 않았다. 왜 그럴까? 평소 공항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방안을 드나들며 시끄럽게 떠들어서? 하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 듣는 온라인 수업은 항상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떠한 이유도 핑계 같아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했을까?’ 그동안 몸이 안 좋아서 미뤘던 맥주 한 캔이 간절해졌다.


 처억 척척척척 머릿속처럼 새까만 밤하늘을 달렸다. 아이 낳고 차가워진 몸을 보호한다고 긴 겨울 두꺼운 옷을 둘둘 싸맸는데 집 밖은 어느새 봄이었다. 가로등에 비쳐 흐드러지게 흩날리는 벚꽃은 황홀했고 스치는 봄의 온도는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뛰었더니 금세 차오르는 숨을 가라앉히려 걸음을 늦춰 남편에게 혼잣말하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너블너블 너블대며 이야기를 끝낼 때쯤 알았다. 나는 매일 너무 많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었다.


 결막부종. 안과에서는 자연스레 나을 거라 했지만 겨울부터 눈이 불편하다. 부은 흰자에 눈물샘이 막혔다더니 울지 않아도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그나마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의 기기를 안 보면 좀 괜찮은데, 오래 본 날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눈이 아프다. 거기다 자세가 구부정해서인지 어깨와 목이 시큰시큰하게 쑤셔온다. 이렇게 눈과 목이 아파서인지 요즘에는 두통에 한 번씩 어지럽다. “너는 내가 볼 때마다 온라인 수업하고 있어.” 남편은 내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걱정했다.


 2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병했을 때 어린이집에 잘 다니던 큰아이를 퇴소시키고 매일 집에 있었다. 아직 4세인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내서 별 차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낮잠 안 자는 6세 아이와의 일상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그동안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이런저런 일을 했었는데 그럴 겨를마저 없어지자 점점 우울해졌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대면이 어려운 수업과 모임을 Zoom으로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집에서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나에게 봄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수업과 모임을 찾아 신청했고 흩날리는 꽃잎을 잡기 위해 뛰어다녔다.


 쉼 없이 하늘만 보며 뛰었더니 눈과 목이 저린다. 그만 남편 말대로 꽃 한 송이 손에 쥔 걸로 만족해야겠다. 집에 돌아와 맥주 한 캔 마시며 뉴스를 보는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라고 한다. 황홀하게 피어올랐던 Zoom은 쉬이 지지 않겠지만 계절이 지나면 벚꽃이 떨어지고 다시 초록 잎이 피어나듯이 하나둘 대면 수업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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