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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Jun 15. 2022

최선의 마지막은 언제나 시간의 고마움을 전하며


 “우와! 드디어 끝났다!” 약 2달 동안 선생님의 “좋습니다!”라는 말에 홀려 에세이를 5편씩이나 썼지만, 솔직히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앞선다.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진실’이어서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어 이 글을 봤을 때 지금의 상황과 마음을 잘 전달받을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자신의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묻고 답하는 과정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지만, 어렴풋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한줄기 문장의 답이라도 얻을 수 있어서 나름 굽은 등을 피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나조차 의심하는 글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우선 내보여야 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튀지 않을 포장지로 적당히 둘둘 싸맸는데 테이프를 뜯어 내용물을 보이려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뭐 대단한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었다며 비난하면 어떡하지?’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숨어버릴까 싶었지만 감추기보다 뱉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좋습니다!” 답이 개떡 같다는 걸 뻔히 아는데, 매번 선생님은 좋다고 하셨다. 주문이라는 게 그렇지만 좋다는 말에도 신비한 마법이 깃들어서 연필에 이끌려 쓴 글을 주절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기분들은 마치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에게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노래를 부르는 엄마처럼 부족한 글에도 잘한다며 마음을 담아 응원했다. 그 말이 바람이 되어 등을 밀어줬지만 실은 나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엄마 말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를 위해 무엇일지 모르는 최선이라도 다하고 싶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배의 노를 진심으로만 저었는데 목적지가 생겼다. 나를 내보이는 글은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먼저 느껴질 만큼 어려웠지만, 누군가에게 술술 읽히는 한 줄의 문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깃들게 했다.


 코로나에 걸려 듣지 못한 전 시간의 숙제는 ‘내가 하지 못한 말’이었다. 한동안 글을 쓰기 위해 그 문장을 내 안에 담아 설거지를 하고 집을 치우면서도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이었을지 곰곰 되짚었다. 감정보다 오늘에 치여 흘려보내는 말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운 말이 있다면 역시 “고맙습니다.”

‘늘 오늘이 버거운 나약한 인간이 당신의 작은 호의로 또 하루를 잘 넘겼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이 당신의 우주에 수없이 반짝일 별 중 하나가 되어 당신의 오늘도 비출 별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부터는 그런 바람을 담아 ‘고맙다’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고마운 마음이 그립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제나 어제의 고마움과 오늘의 고마움 그리고 내일의 고마울 마음에 더 전하고 싶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과 잊히고 싶지 않은 의미를 이렇게 고이 적어 나와 당신에게 꼭 편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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