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키 큰 나무의 미혜
Jun 22. 2022
어릴 적부터 집착하듯이 글을 적었다. 성인이 되고서는 친구들과의 수다와 맥주로 쌓이는 마음을 풀어냈지만, 여전히 나를 글로 적어내야만 했다. ‘왜 나는 글을 적고 있을까?’ 하루를 마감하는 만원 버스 안에서도 번뜩 떠오르는 생각을 잊을까 봐 급히 가방에서 펜과 노트를 꺼내는 자신을 보며 의아했었다. 내게 생각은 파도와 같아서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으면 쉬이 지워졌다. 쌓이는 감정을 풀어내려 써 갈기듯 글을 적을 때도 많았지만 잊히는 생각이 아쉬웠다. 그 나이와 상황에만 할 수 있는 생각이 있음을 잘 알아서 내 모든 걸 적어 남기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름의 예민함으로 상처받는 부분도 많아서 언젠가 내 나이일 누군가에게 같을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기록해두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를 풀어내려 연필을 꺼냈지만 적다 보면 끄적이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지금에 딱 맞는 단어나 문장이 생각날 때면 마치 먹고 싶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예쁜 선율의 계이름을 눌러 연주하는 것처럼 신났다. 그 행위에 몰입되면 원하는 맛이 느껴졌고 딩동댕동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이 움직여졌다. 가끔은 황홀해져 내가 사람이 아닌 원하는 형상이 될 수 있다면 그림이나 글로 남겨지고 싶기도 했었다. 그래서 끼적일 수밖에 없었다. 보랏빛 우물에 잠겼던 내게는 유일한 생명줄과 같았으니깐….
끝나지 않은 이번 에세이 수업의 마지막 숙제는 ‘글쓰기란 무엇인가요?’였다. 덕분에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어렴풋했던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긴 시간 깊게 살펴보았다. 이토록 오래된 마음을 꺼내다 보니 글이 길게 늘어졌지만, 결론은 ‘글쓰기는 나’라는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나를 풀어내던 방법과 낙, 희망이었으며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내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외로움을 알아주는 친구다. 숨 쉬는 순간마다 지금의 나를 적어 남기고 싶다. 아마 앞으로도 쌓여가는 생각과 감정을 잘 흘려보내기 위해 나는 나를 그려내며 살아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