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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Aug 06. 2022

40

40의 프롤로그



 40세가 되었다. 지금 숫자가 된 지 7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직도 현실감이 없다. 그런데 40대가 되었다고 주위에 나블나블 떠드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나름 상처럼 느껴지나 보다. 전에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고 출연진에게 질문했을 때 '아니요. 안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윤여정' 선생님께서 답하시는 걸 듣고는 왜인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내게 눈부시게 반짝이는 젊음은 황금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명목만 주던 무력감의 연속이었다. 이토록 아픈데 어른들은 마치 젊음이 만병통치약인 듯이 말씀하셔서 '나만 왜 이럴까?' 끊임없이 자신을 책망하던 숫자였다. 그런데 TV 속 그녀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67세의 어른이 청춘을 마다하며 처음일 나이를 위로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일지는 몰라도 오래 바라던 답변에 막혔던 한숨이 크게 내쉬어졌다.


 마흔이 되었다. 나의 종점은 30일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우울의 파도를 넘고 넘어 40이 되었다. '잘 버텨냈다.' 서른이 지나고부터는 나도 모르게 나를 다독인다. 아픈 마음은 나만 아는 기억이라 위로해줄 사람 역시 나뿐이다. 그동안 상처 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가책했었다. 하지만 어릴 적 생긴 상처는 깊숙이 새겨져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아물지를 않는다. 도리어 자신을 좀먹을 뿐. 이제는 그냥 미움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자연스러운 감정에 죄악감을 느껴 보랏빛 우물에 잠기기 더는 지긋지긋하다. 고심해보면 모른척했거나 덮어버렸던 감정들 또한 나다.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고통스러워도 깊이 들여다볼 거다. 이미 서로 다른 관점으로 지나버려 엉킬 대로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잘라낼 방법도 용기도 없지만, 앞으로는 내가 나를 알아 자신과의 관계부터 건강하게 지탱하려 노력할 거다.


 40대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우울한 채 한 남자의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 때문에 울었고 덕분에 웃었지만, 이제는 가족을 위해 마음에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일에 과하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40세가 되어도 나라는 사람이 뭔지 모르겠지만 40대부터는 나로 살고 싶다. 수많을 마음의 방. 그중 하나의 방에 잔잔한 바다를 담아 거세게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지루하리만큼 너울너울한 물결에 나른하게 누워 나의 파도를 탈 거다. 이제 더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휩쓸려 나를 잃고 싶지 않다. 이 짧은 글의 문장도 2주 동안이나 괴로워하며 썼는데 40년 동안 굳어진 나를 바꾸기란 절대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들여다보며 꾸준히 그리며 쓰려 한다. '내 마음이 그렇구나.' 아무도 몰라주는 마음을 40부터는 내가 나를 받아주며 스스로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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