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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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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Aug 18. 2022

여름방학



 초록이 잔뜩 묻은 계절. 어김없이 올해도 가벼운 배낭 하나, 돌돌 말린 돗자리를 어깨에 메고 나들이를 나갔다.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서쪽 섬 우리 동네는 매년 같지만 다른 여름을 담기에 충만하다. 타악!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이제는 제법 단단해진 두 다리로 힘껏 언덕을 뛰어오른다. 나도 아이들의 나비 손짓 같은 옷자락에 홀려 뒤뚱거리며 따라 오르다 보니 이윽고 너른 언덕 위 양털 구름 가득한 하늘에 닿아있었다. 여름의 아이들은 손짓 한 번에 바람이 되고 손짓 한 번에 날개가 되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그 풀잎 사이를 쉼 없이 뛰어다닌 아이들에게서 건강한 초록 내가 묻어난다.


  한동안 쏟아지는 빗줄기에 갇혀 우리의 여름은 거북이걸음처럼 느렸었다. 콜록콜록 둘째 아이의 잦아들지 않는 기침에 들썩거리는 가슴을 한없이 쓰다듬었더랬다. 기나긴 비의 계절. 쌓여가는 약병만큼이나 지겨운 여름 감기는 참 그리 쉬이 낫지를 않는다. 전날 밤 물기 가득 머금은 눅눅한 이불에 누워 창밖에 반가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남편에게 내일은 해가 뜨겠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내심 말간 해의 얼굴을 보고 아이의 기침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아이들은 매미를 잡겠다며 제 키만큼이나 높이 뛰어오른다. 방아깨비, 메뚜기, 이름 모를 풀벌레 등을 나뭇가지, 초록 잎과 같이 투명한 통에 한가득 욱여넣었더니 금세 작은 초원이 완성되었다. "불쌍해." 언제나 큰 아이가 열어주는 자유에 아쉬운 기색 없이 어디론가 폴짝폴짝 뛰어나가는 녀석들. 덕분에 가벼운 통 휙휙 휘두르며 바다로 걸음을 옮겨 적당한 자리에 웅크린 돗자리를 활짝 펼쳤다. 남편이 갯벌에서 아이들과 다시 비어버린 통에 무언가를 열심히 집어넣는 사이에 나는 읽고 싶던 에세이집을 가방에서 꺼냈다. 몇 장이나 넘겼을까? 점차 커지는 파도 소리에 불안한 마음이 들이쳐 고개를 들어보니 그토록 옷이 안 젖게 조심하라고 잔소리했건만 어느덧 아이들은 바다가 되어 해맑게 웃는다. "맥주 한 캔 마실래?" 고함치는 파도처럼 다가오는 아내를 진정시키러 남편은 군것질을 사러 가고 나는 아이들과 모래놀이한다. 아이들이 만드는 알 수 없는 형태의 모래성은 구태여 엄마가 정리하지 않아도 수없이 드나드는 파도에 의해 본래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려진다.


 편의점에 다녀온 남편이 건네는 가슴까지 탁 트이게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니 내 안에도 바다가 들어와 넘실댄다. 쉴 새 없이 귓가를 치는 바닷바람과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흩트려놓는 파도 소리가 더할 나위 없는 배경 음악이 되어 이 여름을 연주한다. 점차 하늘이 시간을 붉게 물들이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는 장밋빛 하늘을 바라본다. 밀려오는 파도와 그 바다를 부서트릴 전사처럼 용맹하게 튜브를 타고 돌진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 뉘엿뉘엿 저무는 붉은 해 밑으로 금빛 보석을 흩뿌리는 윤슬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행복하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바다의 불꽃이 되어 남은 여름을 화려한 불꽃놀이로 터트렸다. 달이 차올라 바다가 넘실대면 저무는 여름의 자리가 아쉬워도 그만 정리해야만 한다. "업어줄까?" 종일 바깥 놀이에 비틀대는 아이를 등에 업고 가만가만히 달을 향해 걸었다.

 "엄마, 저 끝까지 올라가면 달까지 갈 수 있을까?"

 "글쎄… 얼마나 올라야 저 달까지 갈 수 있을까?"

  등 뒤에 뜨끈한 아이의 가슴을 맞대고 기억하고픈 우리를 몇 번이나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샤아~ 쏟아지는 샤워기에 오늘의 여름을 씻겨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혔건만 온종일 치열하게 뛰어논 땀방울에서는 한낮의 바다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어느새 우리의 여름 방학도 끝나간다. 한밤에 화려하게 타오르던 불꽃놀이처럼 여름의 불꽃도 타닥타닥 점차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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