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 큰 나무의 미혜 Sep 02. 2022

빨래방은 비를 타고

 


 일기예보에 장마 소식이 들려오면 언제쯤 빨래방에 갈지부터 고민한다. 이왕이면 가족들에게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바구니에 빨랫감이 차곡차곡 쌓여있을 때 가면 좋을 텐데 약 일주일 넘게 비 그림만 그려져 있으면 날을 정하기 여간 애매한 게 아니다. 버틸 만큼 버티다가 도저히 미룰 수 없을 만큼 쌓아둔 옷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면 매시간별로 최소 강수량을 확인한다. 억세게 쏟아지던 비가 좀 잠잠해진다 싶으면 집에서 가장 큰 비닐 가방에 세탁기로 돌린 빨래를 한가득 넣는다. 몸의 중심이 휘청이도록 무거운 젖은 빨래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남은 한 손에는 줄줄이 두 아이를 붙들어 빨래방으로 향한다. 빨래방은 연신 내리던 빗줄기에 갇혔던 아이들에게 신나는 이벤트와 같은데 자판기와 레트로 오락기까지 있어 “엄마 언제 빨래방에 갈 거야?”를 내내 묻는다.

      

  막상 가더라도 나름 엄격한 엄마 때문에 맘껏 게임을 하거나 쉽게 음료수를 뽑아 마실 수는 없지만, 가끔 마음 넉넉하신 어른들께서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들을 보시고는 엄마 몰래 쌈짓돈을 쥐여주신다. “내 손자 같아서 그래에~ 이런 거 보면 꼭 하고 싶어 하더라고오~” 본인 돈을 내주시면서도 아이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참 그렇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그 다정한 눈빛에 ‘우리 부모님께서도 어디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보면 내 손녀, 손자 같다며 마음을 나누실까?’ 생각이 스쳐서 나 역시 부모님처럼 정겹게 대하게 된다. “고맙습니다!” 칼칼한 일상에 설탕처럼 달콤한 친절이 한 스푼 추가되면 어느새 나는 부드러운 차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따뜻함 한 잔 따라주고 싶어진다.      

 

 철커덩 텅텅…. 이번에는 어느 부부께서 코코팜을 사달라며 자판기 앞까지 엄마 옷자락을 끌어당기는 아이를 보고 동전을 넣어주셨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손을 힘차게 내저어도 엄마 눈치를 보는 아이에게 마시고 싶은 음료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라고 부추기신다. “저희는 동전이 많아서 그래요.” 무뚝뚝하게 말씀하시지만, 그 안의 상냥함까지 감추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극구 사양할 수도 있었지만, 음료수를 받고 편의점에서 샀던 과자 한 봉지를 나눠드렸다. 빨래가 건조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빨래방 테라스 의자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코팜과 꼬깔콘을 먹었다. 흔들흔들 기분 좋게 흔들리는 아이의 발을 보며 슬쩍 옆을 보니 과자를 싫어하신다던 분들도 봉지를 뜯어 아샥아샥 맛있게 드신다. 샤아악- 그동안 갑갑했던 빗줄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삐익- 건조기가 다 돌아갔다. 잘 말랐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건 한 장을 꺼내어 손등에 비벼봤다. 햇살처럼 따끈하게 갓 나온 두툼한 수건이 기분 좋게 뽀송했다. 다시 커다란 가방에 최대한 구김 없이 건조된 세탁물을 담았다. 좀 더 가벼워진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아이들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안으로 들어오시던 또 다른 손님분께서 매너 있게 문을 잡아주신다. “고맙습니다!” 물 폭탄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두 아이와 집 밖으로 나가기 힘겨워서 비 올 때마다 건조기가 필요하다고는 생각되지만 내심 나도 아이들처럼 빨래방이 비 오는 계절의 설레는 이벤트처럼 느껴지나 보다. 아직은 그리 큰 절실함이 없는 걸 보면….




매거진의 이전글 예솔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