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솔의 말
설거지를 끝내고 빼꼼히 들여다본 방문 사이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보였다. 둘이 궁둥이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댄 채 쫑알쫑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깨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엄마가 집안일 하는 동안에 이렇게 잘 놀고 있었다니 기특해라. 틀림없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빨리 가서 같이 놀아야지!'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을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자연스레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스터의 악당으로 변하여 놀이에 끼어들었다. "냐하하하! 그 포켓몬을 내놓아랏!" 늘 그랬듯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포켓몬 디스크 하나를 빼앗아 도망가려는데 갑자기 "엄마! 말하고 놀아! 우리 둘이 놀고 있었잖아! 같이 놀아도 되는지 물어봐야지!" 큰아이의 호통에 알콩달콩했던 분위기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어… 미 미안해… 같이 놀아도 돼?" "안-돼!" 아이들은 엄마가 어줍게 잡고 있던 디스크를 뺐고는 사정없이 문밖으로 밀어냈다. 쾅! 세상에 이런 문전박대는 처음인지라 일순간 벙쪄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지?'
유난히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는 태어나서도 탯줄을 끊지 못한 태아처럼 엄마 가슴에만 꼭 붙어있었다. 잠결에도 엄마 품이 느껴지지 않으면 빽! 하고 울어버려서 남편과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고 흔들의자에 앉아 선잠을 잤었다. 2년 터울인 둘째 임신으로 만삭이었을 때도 불룩 나온 배 위에 앉혀 안고 다녔지만 무거운 몸과 다르게 마음은 가벼웠었다. 내 안에 담을 수 있을 때 아이의 눈빛과 작은 손짓 하나하나까지 모두 눈에 담고 싶었으니깐. 둘째가 태어나서는 전처럼 오롯이 안아줄 수 없었지만 다 같이 잘 놀려 애썼다. 시간표를 짜서 산책하러 가고 요리를 만들며 긴 시간 인형 놀이로 졸린 눈을 억지로 깨워 밤낮을 온전히 함께했었다. 간간이 째깍째깍 쉼 없이 도는 육아에 사라지는 자신이 애달파져 각자의 시간을 간절히 바라기도 했지만 이렇게 난데없이 허락받고 놀이에 참여하라는 통보를 받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똑똑똑 "예솔아, 우솔아, 엄마도 같이 놀아도 될까?" 조금 열린 방문 틈으로 이제부터 허락부터 맡기로 꼭꼭 약속받고 나서야 닫힌 마음은 활짝 열렸다.
엄마가 되고서부터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잘 독립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우리 아이들은 완벽한 우주 같던 엄마가 사실은 사라지는 희미한 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매일 실망하며 자라난다. 그러하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근래 엄마 손을 놓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한 발짝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조금 후련한 불안감으로 먼발치서 분주히 눈으로만 좇았었다. 한참 이리저리 오르고 미끄러지느냐 가느다랗게 맺힌 땀방울이 반짝이며 흩뿌려질 때쯤 다급히 엄마를 찾던 아이들에게 마치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무처럼 손을 흔들어줬다. 그날 놀이를 마치고 다시 엄마에게로 뛰어드는 아이들을 힘껏 안으며 '우리 이렇게 섭섭하지 않게끔 한 발짝씩 서로의 거리를 넓혀나가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일까? 지나가는 유년이 애틋해져 각자의 궤도를 찾아가는 우리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벌써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유아기의 순수한 엉뚱함이 없어졌지만, 아이들이 더 굳게 방문을 잠그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서툰 글로라도 남겨보고 싶다. 서로에게서 건강하게 독립하기 위해 아이들의 작은 몸짓과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