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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Jul 20. 2022

예솔에게

딸에게 쓰는 편지



 예솔은 작은 소리에도 바스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유리 같은 아이. 조금이라도 소리가 커지면 얼음처럼 굳어져 울먹이는 아이. 매 순간 무한한 사랑을 요리해 먹여야만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 그래서 매끼 사랑을 주는데도 늘 배고파해서 내게 사랑 만드는 법을 끊임없이 배우게 하는 아이.

 아이와 나의 사랑은 단 한 번의 표현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바뀌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부단히도 나눠야만 해서 단 한 번의 큰소리에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러하기에 살얼음판을 걷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아이의 마음을 살핀다. 어떻게 해야 나의 사랑이 너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을까? 수 없을 사랑의 말로는 부족해서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고민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아이의 말을 듣는 것도 사랑이다. 아이의 자그마한 키에 맞춰 다리를 접어 눈을 맞추는 것도 사랑이다. "고마워", "미안해"라고 용기 냈던 그날의 말도 사랑이다. 오물거리는 아이의 입이 귀여워 내 그릇의 음식을 아이의 그릇으로 옮겨 담는 것도 사랑이다. 아이의 엉킨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도록 한 올 한 올 빗질하는 것도 사랑이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보이지 않는 앞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사랑이다. 고요히 아이의 일상을 챙기는 나의 모든 숨결이 사랑이다.

 아이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단단히 뿌리내려 거친 손길에도 뽑히지 않을 사랑의 씨앗을 심고 싶다. 엄마의 서툰 사랑이 아이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이어질 내일도 별거 아닌 같을 모습의 사랑을 전한다. 매일 사랑을 마셔야 시들지 않는 꽃에 물을 주듯이 너라는 꽃에게 듬뿍 사랑을 뿌린다.






 예솔에게

 그날 밤에도 우린 같을 이야기를 묻고 답하고 있었어. "엄마, 날 사랑해?" 이번에는 왠지 '사랑'이라는 흔한 단어로 너를 채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언제가 들려주었을 자장가 같은 이야기를 나지막이 읊조렸지. 엄마는 예솔이 정말 보고 싶었어. 엄마 배 속에 쉬이 오지 않아서 아니면 쉽게 가버려서 얼마나 애달팠는지 몰라. 그렇게 눈물로 기다리던 너의 심장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참 고마웠어. 쿵더더쿵 쿵더더쿵 이토록 작은 심장으로 엄마 안에 살아줘서. 너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고 엄마는 배속 가득 꼬물거림이 간질거리게 귀여워서 빨리 너를 낳아 안아보고 싶었지. '어떻게 생겼을까? 쏘옥 품에 안으면 얼마나 작고 따스할까?' 사랑스러운 아기의 손을 잡고 걸으며 다정한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어서 예솔이 엄마 안에 있는 동안에 사랑스러운 것들만 두 눈에 가득 담아두었단다.

 하지만 막상 너를 낳아보니 들려줄 이야기보다 기록해야 할 너의 이야기가 더 많더라. 엄마는 예솔의 모든 처음을 기억해. 엄마와 처음 눈 맞추며 웃었을 때, 정확히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빨았을 때, "엄마"라고 나를 보며 불렀을 때, 엄마에게 오려고 한 발짝 발걸음을 떼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을 줘 꽃을 따다 선물했을 때, 서툴게 연필을 쥐어 선을 내그었을 때, '엄마, 사랑해'라고 편지 써줬을 때. 예솔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예솔이 엄마에게로 와서 보여주는 모든 순간이 사랑이야. 매일 사랑의 편지를 써주는 너에게 언젠가 엄마도 이 마음 고이 담아 꼭 편지하고 싶었어. 예솔아 사랑해. 너의 모든 시간은 엄마가 주고 싶었던 사랑이었어. 예솔이 있어서 엄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고 노력하게 되었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너를 쓰며 그리고 있단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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