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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Nov 26. 2022

젊어 보여

남편의 말



 아! 오늘 또 늙었네! 세수해도 뽀얘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다급한 마음에 로션 대신 마스크팩을 붙여보지만 한 번 시든 꽃은 다시 필 것 같지 않다. "여보, 아이크림을 사서 바르면 주름이 좀 없어질까?", "한 번 주름진 꽃잎이 다시 펴지겠어?" 또 또 저렇게 말을 밉살스럽게 하지만 나이 들수록 "괜찮아! 아직 젊어!"라며 우쭈쭈 다독여주는 횟수가 더 늘어났다. "젊어 보여!"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칭찬의 말이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어때?"라고 물으면 "오! 젊어 보여!"하고, 어쩌다 아이돌 음악을 들으면 "오~ 젊은애들 노래~"라며 놀라워한다. 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중년임을 뜻할 텐데 말이다. 우리에게도 그 나이라는 것만으로도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나름 잘록한 허리가 자부심이 되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삐져나온 뱃살과 처진 엉덩이는 내가 되어 있었다.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혹여나 아저씨, 아줌마 같아 보이면 어떡하나 젊음을 기웃거린다. 20~30대랑 같이 있으면 확연히 40대로 보이는데도 아직은 젊다며 서로를 달랜다.


 그런데도 내가 낡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차가운 겨우내 볼품없이 줄에 매달려 바싹 말라비틀어진 생선 같다. 다신 통통하게 물이 올라 생기있게 펄쩍펄쩍 뛰지 못하겠지? 이제라도 닦아보면 빛이 날까 싶어 슬슬 쓸어보지만, 마음부터 번진 녹은 아무리 문질러봐도 윤이 나질 않는다. 나는 이렇게 낡아 늙어가나 보다. 어릴 적 꿈꿨던 중년은 그리고 노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텐데 자신을 가꾸지 못한 세월을 후회한다. "이제 나에게 로맨스는 없을 거야." 쓸쓸한 가을바람에 문득 서글퍼져 남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 로맨스를 바란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님 책의 40대 여주인공이 아득히 떠올라서 그랬다. 40대가 된 아줌마에게 그리 설레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을 거야. 어차피 누군가를 만나러 밖에 나가지도 않고 매일 집에서 아이들만 보느냐고 단장할 시간도 없지만, 그냥 이렇게 세수하다가 거울을 보게 될 때면 달라진 내 모습에 씁쓸해진다.


 자연스레 주방 싱크대 한쪽에 쌓아둔 건강보조제로 발이 향했다. 탁탁! 갈색 통에서 약 두 알을 꺼내어 한 알은 꿀꺽 삼키고 남은 한 알은 물이 담긴 컵과 함께 남편에게 내밀었다. 이제는 약으로 버티는구나. 20대에 만나서 같이 나이 들어가며 서로 늙어가는 오늘을 지켜봐 주는 친구. 점차 아이들이 크면서 남편 혼자 아등바등 일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진다. 아빠가 되고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만 했던 남편이기에 40대부터는 몸 먼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언제 뚝 꺾일지 모를 생이지만 서로에게는 영원히 지지 않을 꽃이 되고 싶다. 제법 오래 붙여둔 마스크팩을 뗐더니 피부가 정말 좋아졌다며 옆에 붙어 호들갑을 떠는 남편. “아! 뭐야! 왜 그래? 나아지지도 않았구먼!”, “아니야! 젊어 보여!" 뻔히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나도 모르게 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남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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