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 큰 나무의 미혜 Dec 30. 2022

크리스마스 선물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산타할아버지 아니 산타 할머니가 된다. 아이들이 편지에 어떤 선물을 썼는지 알아내기 위해 관심 없는 듯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춘다. 후후훗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그들의 비밀을 밝혀내기만 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인터넷으로 주문해야지!

 "안돼엣! 말하면 소원이 안 이루어진단 말이얏!"

 "그래? 그런데 이맘때쯤 산타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시거든. 그러니깐 무슨 선물이 받고 싶은지 말해봐."

 "정말? 그럼, 엄마도 산타할아버지 전화번호 알아?"

 "아니. 엄마는 몰라. 산타할아버지만 아셔."

 "음… 아빠에게는 말하면 안 돼! 엄마만 알고 있어!"

 "알았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정말 비밀이야. 나는 살아있는 에브이를 (포켓몬스터) 받고 싶어."

 "나는 살아있는 솔가레오!" (이것도 포켓몬스터 -_-;;;)

 으잉? 두 녀석 다 실재하는 포켓몬스터라니! 꺄악꺄악꺄악 까마귀 울음소리가 세 번이나 들렸다. 종종 포켓몬 트레이너가 꿈이라고 말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로 진짜를 받고 싶어 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대체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이미 좋아하는 포켓몬 피규어도 생일 선물로 사줬데 어지?

 "포켓몬스터는 만화라서 살아있지 않아!"

 "하지만 만화 속 세상은 어딘가에 있어.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들어가셔서 포켓몬을 데려올 수 있을 거야."

 "산타할아버지의 요정들은 장난감만 만들어서 다른 건 줄 수 없어."

 "그래? 그럼 됐어."

 "그거 말고 받고 싶은 장난감은 없어?"

 "응, 없어."


 축 처진 어깨에 한껏 가라앉은 표정을 보니 내 가슴도 찌릿찌릿 아렸다. 아이들이 뭘 좋아했더라? 다급히 과거의 시간으로 촤르르륵 머릿속 필름을 되감아 봤다. 그래! 랜덤뽑기! 나는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면 너무 싫은데 아이들은 포켓볼의 비닐을 뜯고 뚜껑을 열기까지 어떤 포켓몬이 나올지 맞히기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아이들을 각각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내고 대형마트로 내달렸다. 다행히(?) 벼락치기 산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평소 한산하던 장난감 코너 카트 디딜 틈도 없었다. (흑! 육아 동지들 힘내보자고욧!) 지이이잉~ 마치 포켓몬에 관련된 상품은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스캔을 시작했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포켓몬 인형과, 바스볼, 스티커 등등 왔던 길도 되돌아보며 빠짐없이 카트에 담았다. 헉헉, 다음은 포장! 어떻게 할까? 아! 예솔이 선물 상자를 좋아하니깐 올해는 예쁘게 담아볼까나? 역시 마트 내에 뭐든지 다 있다는 가게로 갔더니 딱 적당한 크기의 상자가 있었다. 거기에 예솔이 좋아하는 하트 무늬까지! 오예! 모든 것이 완벽하다. 비록 살아있는 에브이와 솔가레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지는 못하지만, 평소에 관심 있던 장난감이니 분명히 좋아할 거다. 제발 좋아해야 할 텐데….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아이들 끝날 시간이었다. 선물부터 재빨리 숨기고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그날도 아이들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보통날을 보내고 밤에 몰래 일어나 선물 상자를 꾸리려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 크리스마스이브! 이번에도 온수 매트가 선사한 포근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우리 집은 밤 8시에 침실로 들어가 9시쯤 이른 잠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재우고 이런저런 일을 했는데 겨울이 되어서인지 사십 대가 되어서인지 양옆에 꼭 붙은 아이들과 함께 달콤한 이불속으로 스르르륵 녹아내린다. 하지만 내일은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다. 절대로 잠들어서는 안 되다! 드르렁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역시 잠들었다. 조용히 거실로 나와 시계를 봤더니 아직 10시 30분, 다행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기에 충분하다. 살금살금 다용도실에서 깊이 숨겨둔 선물을 꺼냈다. 먼저 상자를 살 때 같이 챙겨둔 스파게티면 같은 종이를 바닥에 조심조심 깔고 테트리스를 하듯이 요리조리 장난감들을 맞춰봤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게임이 테트리스였는데 착착 들어맞는 걸 보니 이러려고 열심히 했구나 싶어져 나름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킨더조이 초콜릿과 참쌀전병 과자도 몇 개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자, 이제 어디에 숨길까? 너무 꽁꽁 감추지 않으면서도 쉽게 찾을 수 없어야 할 텐데…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 어디 가는지 집안을 슥 둘러봤다. 우선 화장실에 갔다가 책상에 앉아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며 흔한남매 책을 보겠지? 그래! 의자 위에 둬야겠다! 반듯하게 올려놓고는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아이들 카디건으로 덮었다. 이러면 어렵지 않으면서 쉽지도 않을 거야. 흐흣 내일 선물 상자를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에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 이것 봐! 선물이야아!"

 "으응? 무슨 선무울?"

 어제 너무 늦게 자서인지 눈꺼풀이 딱 달라붙어 떠지지 않다.

 "내가 화장실 가다가 뭔가 이상해서 "오? 이게 뭐지?" 요렇게 책상 밑을 봤는데 뭐가 보이는 거야! 그래서 가봤더니 선물 상자인 거 있지!"

 "으응? 선무울사앙자?"

 "응! 산타할아버지가 주셨어! 내가 산타 양말 속에 넣어둔 편지와 코코아도 가져가셨어!"

 "누나! 내 편지도 가져갔어?"

 "응! 그리고 네 선물도 의자 위에 있어!"

 학교 가는 날마다 늦잠 자면서 왜 휴일에는 일찍 일어날까? 정말 미스터리다. 순식간에 아이들은 우르르 거실로 나가 선물 상자를 열어보고 있었다.

 "우와! 피카츄와 팬텀이야! 누나! 이건 뭘까?"

 "우솔아! 이건 파이리야! 네 이브이랑 바꿀래?"

 잠을 못 자서 피곤하지만, 아이들 환호를 들으니, 마치 타우린 함량이 높은 피로회복제를 들이켠 것처럼 두 눈이 번쩍 뜨다.

 "우아~ 얘들아!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야? 엄마도 가지고 싶다아~"

 "안돼엣! 우리가 착한 일해서 받은 거야! 그래도 엄마 불쌍하니깐 초콜릿 하나 줄까?"

 "으응, 정말 고마워."

 크으~ 이 정도면 여우주연상감 아닌가? 어제 마트에서 본 육아 동지들도 아침부터 열연을 펼치고 있겠지? 아이들이 언제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맛에 산타할아버지 아니 산타 할머니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젊어 보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