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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Nov 13. 2022

진정한 1학년이 된 것 같았어!

예솔의 말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가까워질 무렵 아이의 하교 시간은 일정치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미리 알림장에 공지를 해주셨지만, 깜빡 잊고서는 평소 끝났던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딴에는 집에서 일찍 나왔다며 여유롭게 차를 모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해변에 반짝이는 금빛 모래 같은 눈부신 분홍 가방을 메고 경쾌한 걸음걸이에 맞춰 나풀거리는 원피스와 긴 머리카락의 흔들림이 왠지 익숙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는데 앗! 내 딸 예솔이다!


"예솔아!"

"엄마!"

"어떻게 걸어왔어?"

"엄마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혼자 걸어왔어! 오늘 4교시에 끝났는데 엄마 몰랐지?"

"미안해, 깜빡했어."

"괜찮아! 진정한 1학년이 된 것 같았어!"


 해맑게 웃으며 한껏 들떠 말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너무 놀라 온몸의 가느다란 떨림이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집은 학교와 동떨어져 있는데 아이가 걸어온 시간을 대략 계산해봤더니 약 30분 정도였다. 아빠와 엄마하고 다녔던 길을 기억하고 왔다는데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밭길과 횡단보도도 없는 찻길이 머릿속에 그려져 섬뜩했다.


"예솔아, 엄마가 없으면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전화해."

"알았어. 그런데 혼자 걸어와 보고 싶었어."


 언젠가는 아이 혼자서 학교에 다닐 거란 생각은 했지만 아직은 일렀다. 그러면 도대체 아이가 몇 살이 되었을 때 완전히 자율에 맡길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서로에게 독립을 꿈꾼다면서 나는 과연 독립적인 육아를 하는 걸까? 안전, 규칙, 예절 등을 알려준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에게 맡겨도 되는 많은 부분을 참견하고 내 생각을 강요하진 않을까?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며 도전하는데 엄마인 내가 더 애착해서 대신 밥을 떠먹여 주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봤다. 일상 속의 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경계가 모호하다. 더는 아기가 아닌 아이들을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지 갈팡질팡하면서 스스로 하지 않으면 욱해서 잔소리를 쏟았다. 혼란스러웠다. 엄마인 내가 이럴진대 아이들은 얼마나 눈치를 볼까 싶어져 미안했다. 어느 선까지 키우면 끝나겠지, 기대했는데 육아서를 아직도 수시로 펼치게 된다. 유아기에는 엄마가 해줘야 할 일만 봤는데 이제는 튼튼한 날개를 키워 날아갈 방법을 공부한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의 나침반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그저 연을 날리듯 아이들의 바람에 맞춰 얼레의 실을 풀면 될지도 모르겠다.


 띠링! 울리는 알람에 스마트폰을 봤더니 여성가족부에서 보낸 주변에 거주하는 성범죄자 현황 알림이었다. 검색해보니 아이가 걸어왔던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에 살던데 그 외에 뉴스에 나오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풀었던 줄을 이내 다시 잡아당기고야 만다. 아악~ 자식이란 연은 언제쯤 얼마큼 풀고 잡아당겨야 할지 훅 불어오는 바람에도 고민이다. 이런 시끄러운 내 속도 모르고 남편은 집에 무사히 잘 왔으면 됐다며 껄껄껄 웃었다. 하지만 자기도 내심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야 사주겠다더니 우선 문자와 전화만 되는 키즈폰을 예솔에게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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