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었다. 출산 후 쉼 없는 육아에 코로나까지 더해져 아이들과 한 몸처럼 엉켜있었다. 살얼음판 같은 아이의 감정에 갈피를 잡지 못해서 이리저리 흔들렸고 그 심정을 담아 그림책을 쓰고 그렸다. 아이 낳고 6년 만이었다. 너를 위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를 위한 그림이었다. 쉬이 꺼지지 않는 전염병에 도서관 수업마저 드문드문 위태로이 느껴지던 나날이었지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선을 내긋던 1년이었다. 아니, 마치 미친 사람처럼 선을 갈겼다. 나처럼 텅 빈 종이 위에 오일파스텔을 힘껏 칠하고 세심히 색연필로 생각을 다듬었다. 쌓인 마음을 풀어내려 그림을 그렸는데 점점 엄마가 되고서 지워졌던 내가 다시 그려져 있었다. 버겁지만 행복했다. 이토록 그릴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수업은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싶은 바람이 모여 함께 선을 이었다. 수업하는 동안에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어찌하였든 책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신 분들이었다. 내 일기장 같은 그림책에는 응원이 곱해져 허황한 용기가 생겼다. 나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그림을 수정해서 공모전 세 군데에 냈다. 결과야 물론 뻔했지만, 그보다 참담한 건 자신을 직시하는 일이었다. 에세이 수업 때도 느꼈지만 혼자 볼 글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글은 쓰는 자세부터가 달라진다. 그런데 나 좋아서 쓰고 그린 그림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려니 양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출판사에 투고하면 거의 다 수정되어 전혀 다른 책이 될 거라는 조언에 몇 군데 보내봤지만, 예의 바른 똑같은 거절 메일에 생각만 짙어졌다. 그만하자. 시작부터가 지극히 사적이었다. 더욱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즐겨보지 않는다. 아이들의 떨떠름한 반응에 내가 하고픈 말이 아닌 그들이 보고 싶어 할 이야기를 짚는다. 나는 그렇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사랑하는 한 사람이 좋다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MBC창작동화대상 심사평
산그림 _ WEEKLY 미출간창작그림책
‘사랑해’ 내 안 깊숙이 들어가 글을 생각하며 썼던 어느 날, 책의 숲에서 무엇인지도 모를 그것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사랑이란 마음이 또르르 굴러와 반짝 빛을 내었다. 내가 글로 남는다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읽히고 싶다. 그렇기에 희로애락의 감정 밑에 사랑이란 바탕색부터 깔아둘 거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각날 때마다 만들고 싶은 그림책을 메모장에 적었더니 스마트폰의 용량이 가득 찰 지경이다. 40대가 되어도 공감은 어렵지만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는 한 줄의 선을 부단히 긋고 싶다. 올 한 해 글쓰기와 그림책 모임을 통해서 느꼈다. 내 안의 우물 같은 글과 그림이 누군가에게도 따스한 한숨을 불어넣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색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감정에 따라 흐른다. 여전히 아이가 빨갛게 달아오르면 급하게 식힐 방법을 찾고, 환하게 반짝이면 그저 따라 웃는 바보 엄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목차에 꼭 넣고 싶었다. 엄마인 나를 이토록 그려 넣은 그림책을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