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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Mar 16. 2023

왜 껌딱지 엄마가 되었을까?




 처음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었던 날은 내가 손가락으로 꼽는 선명히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차가운 산부인과 의자에 반쯤 누워 뜨거운 두근거림을 들은 순간을. 내게 쳐진 커튼 옆으로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남편의 눈빛을 보며 나 역시 살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신께 받았다고 느꼈다. 3년을 기다린 사람이었다. 쓰디쓴 한약과 고문 같던 양의학의 힘으로 임신테스트기는 두 줄을 보여도 마치 약속한 날짜인 듯 피가 흘러 눈물이 터졌다. 제발 내 안의 작은 씨앗이 싹을 틔워 움트기를 새벽을 지새우는 달과 새날을 밝혀오는 해에게 두 손을 모아 기도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또 그렇게 한 달 두 달 3년 동안 반복되는 희망 고문에 몸과 마음이 너덜거려 단념하려고 했을 때 아기 천사가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쿵더더쿵 쿵더더쿵 하얀 진료실을 가득 울리는 삶의 의지를 들으며 기다렸던 시간만큼 아이 옆에 있겠노라 약속했다. 내 자라난 손톱보다 가느다란 존재가 온몸으로 뛰는 화면을 보며 사랑만 주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아이가 눈을 떴을 때는 낯선 방안이었다.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와 한 번도 본 적 없는 벽지 무늬에 둘러싸인 시큰한 공간. '또 잠든 나를 두고 갔구나.' 천장에 줄이 묶여 대롱대롱 도는 등을 따라 멍하니 시선을 쫓으니 시린 눈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그나마 이불 속이 좀 더 따뜻할 것 같아서 그냥 머물기로 했다. 째깍째깍 절대 어긋나지 않을 박자로 초를 지나는 시계 소리에 맞춰 방 안이 밝아져 제법 시간이 지났겠구나 싶을 때쯤 방문이 열렸다. "어머! 아직도 자네? 일어나! 밥 먹자!" 마치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깬 것처럼 찬찬히 이불을 젖히고 조심스레 따라 나갔다. 어젯밤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북적대던 거실에 단출한 밥상 하나만 놓여있으니 휑했다. "네가 그만 잠들어서 엄마가 맡기고 갔어. 곧 데리러 오신대!" 곧… 이라면 언제일까? 오늘? 내일? 아니면 매번 그랬듯이 달력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꼽다가 더 세지 못할 때쯤 오시려나? "네" 모래 같이 까슬거리는 밥알을 억지로 삼키며 대답했다. 또 이리될까 불안하여 방에 들어가 자라는데도 엄마 허벅지를 베고 누워 바짓자락을 꼭 붙들고 있었다. 울컥, 눈물이 목구멍으로 솟구쳐올라 음식이 삼켜지지 않았다. "다 먹었어? 이제 그만 치운다." 줄어들지 않는 밥그릇을 힐끔 곁눈질로 보시더니 뭐가 그리 급한지 대답할 새도 없이 급히 상을 치우셨다. 어미가 없는 아기새는 그저 끼니를 챙겨준 어른의 뒤만 졸졸 따랐다. "나 따라다니지 말고 너 혼자 알아서 놀아." 불친절하지도 않지만, 친절하지도 않은 억양. 단지 잠시 맡은 남의 아이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텅 빈 집안에서 홀로 놀려니 시곗바늘이 제자리걸음이어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어느 쪽으로 발을 내밀어도 초행이기에 수없이 눈으로 사진을 찍으며 걸었다. 혹여나 길을 잃으면 다시는 엄마를 만날 수 없기에 내딛는 모퉁이마다 되짚으며 들어섰다. 그렇게 기억할 수 있는 골목까지 나아가다 설레던 두근거림이 불안함으로 바뀌면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대문을 찾았다. 하지만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도 들어서기 망설여졌다. 집이지만, 집이 아닌 집. 털썩, 대문 앞에 주저앉아 땅바닥의 흙만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은 다른 사람이 아닐까? 아기 때 나를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째깍째깍 집게손가락으로 그리는 동그라미 수가 많아질수록 상상이 과해져 괜스레 비슷한 또래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어른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사람이 우리 엄마는 아닐까? 혹시라도 나를 못 보고 지나치면 어쩌지 싶어 빳빳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내보였다. "애가 어디 갔지? 밥 먹어라!" 아이를 찾는 고함에 벌떡 일어나 뛰었다. 다시 공허한 거실에는 작은 밥상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뎅! 뎅! 정각에 맞춰 울리는 괘종시계의 울음을 들으며 오늘도 서러운 하루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뜨는 해와 지는 달을 따라 시리기만 한 마룻바닥에 익숙해져야 했던 같을 날, 간절히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응, 응, 오호호호 걱정하지 마. 아주 잘 놀고 있어. 으응, 그래 끊어!" 그토록 듣고 싶던 목소리였는데 누구 하나 그리움을 채워주지 않은 채 딸칵! 끊어버린다. "네 엄마가 곧 오시려나 봐." 곧…. 멍하니 벽에 걸린 달력의 숫자를 짚어보다가 이내 돌아섰다. 삼시 세끼보다 더 꾸역꾸역 삼켰던 눈물은 메말라 얼굴에 허연 선을 그렸다. 그 선을 밟고 아이는 조금 더 먼 골목길로 내달렸다. 비슷한 또래 아이와 바닥에 함께 앉아 그림을 그렸고 그 친구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줌마에게 웃으며 손 흔들어 인사했다. 언제나처럼 밥 먹을 때가 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실에는 밥상 대신 웬 낯선 여자가 인형 같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오호호호 엄마가 데리러 오셨네!" 엄마라고? 그러기에는 너무 젊고 예뻤다. 그녀는 안고 있던 아이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더니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어디 갔다 온 걸까? 엄마를 닮아 눈이 큰 남자아이는 자기 피부처럼 새하얀 셔츠와 멜빵바지를 입고서는 새로 산 듯한 로봇 장난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들의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새를 보자 갑자기 흙이 잔뜩 묻은 지저분한 옷이 부끄러워져 다급히 손톱에 낀 때라도 빼보려고 등 뒤로 손을 숨겼다. "미혜야, 이리 와!" 뒷짐 지고 쭈뼛거리는 아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그녀가 너무나 성스럽게 느껴져서 목구멍이 꽉 막힐 정도로 슬펐다.






 "엄마. 내가 어렸을 때… 왜 여기저기에 맡겼어?" 오랫동안 망설였던 물음을 용기 내 목소리로 내었을 때 "난 너희들 맡긴 적 없어! 내가 다 키웠어!" 엄마는 불편한 마음을 단칼에 잘랐다. 또다시 목구멍 위로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꿀꺽 삼켜내며 그저 각자 기억하는 게 다르다고 여겼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큰고모, 작은고모, 큰삼촌, 작은삼촌, 이모네 그리고 강화에 할아버지 댁과 살면서 딱 한 번 뵙고 묵었던 아직도 누군지 모르는 할머니 댁까지 여전히 각각 집의 구조와 골목을 따라 오르던 계단길이 뒤섞여 꿈속마다 내 집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인지 예솔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어린 날의 내게서는 빠져버린 무언가를 아이들은 모르고 지나갔겠구나 싶어 막혔던 숨이 조금 내쉬어졌다. 엄마가 되면 아이들에게 그런 걸 주고 싶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과 안겨 쉴 수 있는 엄마의 품. 그렇게 아이들이 혼자서 집을 찾아올 수 있을 때까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키 큰 나무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부모님을 만나면 온몸이 가느다랗게 떨려오지만 이제 머리로는 이해한다. 이십 대의 어린 나이에 집안일은 여자 일이라며 물 한 잔도 직접 떠 마시지 않던 아버지와 결혼하셔서 연년생을 낳아 키우시기 버거우셨을 거다. 그래서 큰아이만이라도 이 집 저 집에 잠깐씩 부탁하셨겠지. 나도 아이들을 키워보니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하지만, 유달리 시큰하게 파란 밤하늘이면 얇은 달처럼 어른아이인 내가 가느다랗게 떠오른다. 엄마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뭘 하셨을까? 그렇게 맡겨두고 한숨 좀 돌리셨을까? 그냥, 궁금하다. 이상하게 오늘은 아무런 미움도 원망도 없는 밤이다. 이리 쓰고 그리는 불씨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다 타들어 간 잿빛이지만, 그런대로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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