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주말 아침처럼 늦잠을 자고 있었다. 일찍부터 우당탕탕 뛰어놀던 가족이 내 옆으로 우르르르 몰려왔다. 남편은 내가 인질이라며 잡아서 간지럼을 태웠고 아이들은 엄마를 구한다며 아빠를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썼다. 좁은 공간에서 복작복작 한데 뒤엉켜 서로를 밀고 당겼다. "꺄아아아악!" 그때였다. 아빠와 엄마 사이로 비집어 들어오려고 몸을 날렸던 우솔이 그만, 내 손목 위로 떨어졌다. 갑자기 손목이 찢길듯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내질러졌다. "엄마 괜찮아?" 아이가 걱정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아마도 단순히 인대만 늘어났을 테니 일주일만 지나면 나을 거라고 했다. 찾아간 정형외과에서도 엑스레이를 찍고는 그저 힘줄에 문제가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밤에 자다가 통증에 깰 정도로 아프다. 스마트폰만 들어도 손목이 저리고 요리할 때 칼질하기도 힘들다. 일주일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남편의 말과는 다르게 3주째인데도 차도가 없다. 고작 손목이 불편할 뿐인데 일상이 시큰하게 아리다.
올해는 꼭 '여름방학'을 그리겠다며 비싼 A3 프린트기를 샀다. 화면을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시려서 디지털 작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여름의 아이들이 생기가 넘쳐 반짝거리는데 그 모습이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재료는 여름의 맑은 느낌을 표현하기에 수채화만 한 것이 없어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정했다. 하지만 남편이 미술 학원에 다니라고 권할 정도로 서투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손목도 너무 아프고, 그간 꾸겨서 버린 종이만 몇 장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취미 정도다. 좋아하는 글과 그림을 직업으로 삼을 실력이 없다. 이제는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뭘 잘할 수 있을까? 쉬이 낫지 않는 손목을 주무르며 좀 더 젊었을 때 해야 했을 고민을 뒤늦게 한다. 최근에 혼술하며 스마트폰 메모장에 갈겼던 글을 꺼내보니 '나는 후지고 후진 40대 아줌마다'라고 쓰여있었다. 쑤시는 손목만큼이나 마음도 욱신거리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