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사고(思考) 일지
'밀가루 은유'에 대한 재고(rethinking)
우리 삶을 하나의 거대한 밀가루 반죽과 같은 덩어리라고 상상하는 은유에 대해 반추해 보자. 은유의 핵심적 메시지는, 밀가루 덩어리 표면을 따라 기어가는 개미의 모습은 어쩐지 우리 자신의 하루와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개미는 자신이 오르내리는 표면의 전체 모양을 조망할 수는 없으나 국소적으로는 그 굴곡과 질감을 감지한다. 그 작은 감각들을 얼기설기 이어 붙여 방향을 결정하고 나아간다. 우리의 삶도 유사한 면이 있다: 보통 삶의 전체 지형을 일순간에 알아차리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각 순간의 미세한 변화와 기울기에 반응하며 나아간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삶의 전체적인 지형은 종종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후향적으로 재구성되며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적합도
만약 우리의 시야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와 같아서 삶의 전체적 형태를 관망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그 형태를 어떻게 기술(describe)할까? 상상해 보면, 임의의 형태를 기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간을 설명하는 축의 설정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 일차원적인 기준 축을 마음속에 그려 보라. 이제 우리는 밀가루 덩어리의 표면을 따라 움직이는 가능한 모든 거동을 그 축 상에 투영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그림 1).
인간의 직관이 다루는 3차원 공간에서, 높이에 해당하는 개념을 기준축으로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일반적으로 승진과 같은 개념이나, 수직적인 사회 구조의 속성, "이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지"와 같은 은유적 표현으로도 위의 접근은 충분히 정당화된다. 거칠게 말해, 밀가루 표면에서 개미가 이동할 때 개미가 지면으로부터 얼마나 높이 있는지를 측정하여 개미의 움직임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정의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공적인 정도라는 추상적 개념은 보통 '적합도(fitness)'라는 용어로 나타내어진다. 과학적 용어로써의 적합도는 생물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 이 개념을 대입하면, 적합도는 더 모호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적 성공, 경제적 안정, 혹은 학문적 성취가 높은 적합도를 의미할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인간관계의 평온함이나 내면의 안정이 더 높은 적합도의 상태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적합도는 자신만의 좌표계에서 그리는 목표의 함수라고 부를 수 있다.
적합도의 동적 속성(dynamic property)
글의 초반부의 논의로 되돌아가면, 높이를 기준축으로 설정하는 논의는 아주 단순(simplified)화된 형태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삶의 적합도를 측정하는 기준축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개미가 표면의 질감에 따라 방향을 수정하듯, 우리는 매일의 경험에 따라 적합도의 정의를 갱신한다.
젊은 시절에는 "더 빠르게, 더 멀리"라는 구호가 인생의 등고선을 가장 가파르게 올라가는 원동력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더 오래, 더 평온하게"라는 완만한 곡선이 중요해진다. 기존의 정의를 응용한다면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역시 적합도 함수가 재정의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같은 좌표 위에 있으면서도 동일한 좌표를 적합도로 대응하는 함수의 형태가 변형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자연계에서도 재현되는데, 환경이 바뀌면 선택압이 달라지고, 적합도 풍경 자체가 재편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환경과 맥락, 관계와 목표가 달라지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적점의 모양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만의 적합도 함수'를 정의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적합도를 정의하려면, 변수들이 필요하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 결과로 얻는 보상, 그 과정에서의 불확실성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변수들(시간, 관계, 자유, 성취..)이 적합도 함수를 생성한다. 우리는 이 변수들에 아마 다른 가중치를 내재적으로 부여하고 있을 것이고, 이는 균일하지 않으며(non-uniform) 일정하지(non-constant) 않다. 따라서 삶의 적합도란 단일한 함수가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동적 적합도 함수의 전경(dynamic fitness landscape)으로 표현 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이 변동성이 불안정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 삶의 핵심적 특성이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는 언제나 비평형 상태에 놓여 있다. 완전한 최적점에 도달한 존재는 변화하지 않고 살아 있는 체계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적합도의 최댓값을 구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표면 위에서 임시적인 극값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합도를 '정의'한다는 것은 완결된 수식을 쓰는 일이 아니라, 매 순간 갱신 가능한 기준을 세우는 일에 가깝다.
세심한 논의들
필자는 적합도를 속도의 함수로 착각하곤 했다. 빠른 것이 효율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곧 높은 적합도라 믿었다. 하지만 속도는 적합도를 구성하는 변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는 신중한 선택이 더 높은 적합도로 이끈다(앞서가는 타인에 대한 논의를 참고해도 좋다). 잠시 멈추어 관찰하고, 불필요한 소모를 줄이고, 자신이 선 자리의 형태를 정확히 이해할 때 우리는 더 멀리, 오래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적합도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의 문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삶을 최적화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최적화보다는 안착이라는 더욱 말랑한 단어를 선호하는데, 최적화가 함수의 극값을 찾는 일이라면 안착은 변화하는 함수 위에서 안정된 방향성을 유지하는 추상적 개념이다. 그것은 수학적 의미의 극대화라기보다는 동역학적 평형의 개념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삶의 적합도란, 결국 변화하는 세계 위에서 자신만의 평형점을 유지하려는 시도의 총합일 것이다.
아마 개미도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표면의 모양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발끝의 기울기를 통해 방향을 정하고, 낯선 질감 앞에서는 속도를 늦추며, 반복된 굴곡 속에서는 자신만의 패턴을 익혀 간다.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간다. 다만, 우리는 개미보다 조금 더 복잡한 함수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상으로 적합도에 대한 정의를 완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