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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 Y Mar 19. 2023

부모와 아이의 관계- 벌과 교육(2)

부모의 입은 아이의 뇌

4) 변명의 기회와 벌의 납득     


 벌을 주기 전에는 반드시 아이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생각하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아이에겐 나름의 변명이 있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의 변명을 반드시 들어주어야 한다.   

   

 아이는 변명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행위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따라서 뒤따를 벌에만 집중하게 돼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걸리지 않으려 하게 된다.     


 또한 변명의 기회를 주는 것은 아이가 부모를 대화의 상대로서 여기게 할 뿐만 아니라, 아이가 벌을 납득 가능하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벌이 납득 가능할 때, 아이는 비로소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배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마음 속에는 억울함만 쌓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이의 변명을 듣고 그러한 변명이 어째서 변명일 수밖에 없는지를 짚어준 후, 아이가 납득하고 나서야 약속된 벌을 주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의 ‘해명’을 ‘변명’으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사실 해명과 변명을 적절하게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어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의도치 않게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여러분께 해명과 변명을 구분하는 기준을 주자면, ‘해명’은 ‘어떤 행위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에 해당하는 설명이고 ‘변명’은 ‘어떤 행위가 그럴 수도 있었음.’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말해, 해명은 그러한 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면 변명에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다른 가능성’이 숨어 있다.     


 예를 들자면, ‘늦잠을 자면 저녁에 3km달리기를 하기로 함.’이라고 아이와 미리 약속했고 아이가 늦잠을 잔 경우, 아이가      


“몸에 열이 너무 나서 늦잠을 잘 수밖에 없었어요.”는 해명에 해당하고     


“과제가 너무 많아서 늦게 잘 수밖에 없었어요.”는 변명에 해당한다.     


 아래의 예시가 변명인 이유는 낮 시간 동안에 충분히 집중했다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과제를 하는 방법도 있었고 불가피하게 밤에 해야 했더라면 적어도 부모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적절한 해명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조별 과제여서 친구들과 맞는 시간이 늦은 새벽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면 그 역시 해명이 된다.     


 이렇게 해명과 변명을 구분한 다음, 아이에게 어째서 그것이 변명이고 어떻게 행동했어야 옳았는지를 설명한 후에 아이에게 약속된 벌을 주어야 한다. 또한 그것이 변명이라는 것이 아이가 납득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며, 아이에게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만약 아이가 벌에 납득하지 않고 억울함을 호소함에도 벌을 준다면, 그 벌에는 ‘벌’만 있고 ‘교육’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5) 부모가 참여하는 벌     


 또한 벌에는 가급적 부모가 참여하는 형식이 좋다. 아이의 잘못에 부모가 함께 책임지는 형식을 띄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추후에도 자주 소개될 내용인데 여기서 잠깐 소개하자면, 인간의 행동은 뇌의 변연계에서 주관하고 이성적 판단은 전전두엽에서 주관한다.     


 다시 말해 아이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벌에 납득했더라도,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을 ‘마음’이 들어야 행동이 교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자신이 조금 더 불편해지는 방향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원체가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마음을 건드려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려면 부모가 벌에 참여해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자면 ‘늦잠을 자는 경우에는 밤에 엄마아빠와 함께 3km 달리기.’ 등과 같은 것이 있다.       

 사람은 벌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지 못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벌을 받을 때면, 벌을 받는 자신이 아니라 ‘벌’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아이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과 함께 벌을 받는 부모에게 신뢰를 느낀다.     


 이 두 감정은 아이가 잘못을 반복치 않게 해주는 좋은 동력이 될 수 있다. 벌이 단순히 이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벌에는 부모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좋다.                     


6) 집 천장은 아이의 방패.


 벌은 벌을 받는 공간도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특정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벌을 받게 된다면, 그 공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벌을 주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집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아이들이 자꾸만 밖으로 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벌을 줄 때에는 가급적 집을 피하는 것이 좋다. 위의 예에서 ‘달리기’와 같은 벌을 주는 것도 집을 피하기 위함이다. 집은 아이에게 언제나 휴식처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아이를 혼낼 일이 있다면 여유를 갖고 근처 카페에 가거나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는 여러분이 아이의 잘못으로 인한 감정을 억누를 시간을 버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예컨대, 카페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 가급적 당분을 섭취하여 심신을 진정시키고 아이와 같은 음료를 마심으로써 아이의 마음을 열 수도 있다. 실제로 심리학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에 인간은 보다 개방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원을 산책하며 하는 이야기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여러분이 감정을 억누르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또한 아이와 함께 걸으면 몸이 경직되지 않고 풀어져 자연히 마음도 열리게 된다.      


 요약하자면, 아이는 어떤 잘못을 해도 집 천장 아래에서는 혼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이가 집 천장이라는 든든한 방패를 가지고 있을 때 보다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과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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