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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 Y Mar 19. 2023

부모와 아이의 관계-벌과 교육(1)

부모의 입은 아이의 뇌

"부모와 아이의 관계 - 벌과 교육"


 부모로서 자식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는 ‘아이의 잘못에 어떻게 처신하는가?’이다. 부모는 그 스스로 아이에게 벌을 줄 수도 있고 상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가 바른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벌’에 대한 부모로서의 기준을 분명히 세울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여러분이 아이에게 벌을 줄 때에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여러분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분명한 벌의 기준을 세우길 바란다.     


1) 약속된 벌


 벌을 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되지 않은 잘못에는 절대 벌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아이와 벌을 받기로 약속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 아이를 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아무리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아이와 미리 약속하지 않은 내용이라면 아이를 벌해선 안 된다.      


 여러분은 아이의 부모이지 심판관이 아니다. 앞서 밝혔듯, 부모 자식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이러한 신뢰는 절대 쉽게 쌓이지 않는다. 특히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예상 범위 안에서 행동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또한 미리 약속으로 정하지 않을 만큼 비상식적인 일을 아이가 저질렀다면, 그 책임이 온전히 아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지경이 될 때까지, 부모는 아이에게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일의 책임은 아이보다는 부모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반드시 아이와 미리 약속한 일에 대해서만 벌을 주어야 한다. 미리 약속하지 않은 일에는 벌을 주어선 안 되고, 약속된 일이라면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기준에 해당한다.     


2)일관적인 벌


 벌은 일관적이어야 한다. 부모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변해서는 안 된다. 즉, 여러분이 기분이 좋다고 해서 아이의 잘못을 눈 감아 주어서는 안 되고, 또 여러분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더 가혹한 벌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이는 약속된 벌과 연결되는데, 벌에 대해 약속할 때에 약속을 어길 때 받기로 한 딱 그만큼의 벌을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감정에 따라 아이에게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벌을 주고는 한다. 여기서 더 문제를 고르자면 지나치게 가혹한 벌인데, 인간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어서 가혹한 벌을 받을 때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벌을 내린 존재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 결국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관적인 벌을 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잘못을 하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여러분의 기분이 좋을 때 죄를 밝히려 할 것이다.      




3)벌의 목적은 교육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은 아이의 부모지 심판관이 아니다. 여러분이 아이에게 벌을 주는 것은 여러분이 아이의 잘못으로 인해 화가 난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러분은 벌을 통해 아이가 그러한 행동을 다시 하지 않길 바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벌의 종류를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체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폭력이 자식 교육에서 나쁜 것은 폭력이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오직 ‘화가 났을 때에는 폭력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이는 비단 체벌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벌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행위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늦잠을 자는 경우, 휴대폰을 빼앗는 것보다는 ‘3일 간 자기 전에 3km 달리기.’와 같은 것이 좋다.      


 이때 핵심은 기간을 분명하게 정했고 그것이 가혹하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측면과, 무엇인가를 금지하기보다는 새로운 행위를 추가했다는 측면이다. 벌이 가혹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금지’보다는 새로운 행위를 ‘추가’한 것에 주목해 보자.     


 어떤 행위를 금지하게 되면 그 행위에 대한 욕망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왜,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부모가 할 수 있는 금지로는 결국 근본적으로  아이의 행위를 교정할 수 없다.     


 하지만 행위를 ‘추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금지하고 싶은 행위를 할 시간’을 뺏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이 추가할 내용을 학업적 내용과 연관할 수도 있다. 결국 아이가 잠이 부족해서 학교에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문제인 것이라면, 학교에서 할 공부를 미리 밤에 시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금지보다 추가가 더 효과적인 이유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자식이 ‘무력화’되는 것이 교육적으로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아이도 남들 앞에서 기저귀를 갈면 울음을 터트린다. 자신이 원치 않는 행위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수치심이 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다 큰 아이가 부모 앞에서 무력화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아이가 대화의 문을 닫고 잘못을 감추는 데에 급급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벌의 목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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