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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 Y Mar 19. 2023

왜 우리 아이는 내 말만 안 들을까?

부모의 입은 아이의 뇌

"왜 우리 아이는 내 말만 안 들을까?" 


필자가 학부모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우리 애가 선생님 말이라면 뭐든 다 잘 따르는데,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아마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아이는 학원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 말은 잘 듣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독 부모의 말은 듣지 않으려 한다. 조급한 마음에 아이를 붙잡고 이런저런 생각을 말해주면 아이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     


 “아,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대개의 학부모들은 실제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부모들에게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자기가 뭘 알아서 한다는 건지, 알아서 하는 애 같으면 이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걸 모르는지, 내 딴에는 나름대로 조언해 준 건데 얘는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하는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얘가 정말 내 배에서 나온 애가 맞나 싶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후에야, ‘아이는 왜 내 말만 안 들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질문에는 몇 가지 대답이 있다. 한 가지는 1장에서 말했던 대로, 부모는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이가 부모를 ‘교육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아이가 ‘이제 좀 머리가 큰’ 것이다.      


 1m도 안 되는 꼬맹이부터 시작해서 벌써 부모만큼 쑥 커버린 아이가 아직도 마냥 아이처럼만 보이는데, 벌써 어른이 될 단계에 접어 들었다니 어찌 보면 더 없이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대견한 건 대견한 거고, 까칠해진 말투를 듣고 있노라면 ‘이 놈의 쉬키’가 정말 어릴 때 그렇게 해맑았던 내 아이가 맞나 싶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얻어 간다. 그 속에는 마치 인류가 진보해 온 역사처럼, 자기가 믿었던 것이 ‘사실은 그게 아니다.’라든지, 자기가 마냥 신비하게 여겼던 것의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앎’이 주는 힘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이것저것 물어 보며 부모를 기쁘게 했던 내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나를 완전히 바보취급 하기에 이른다. 아이가 자라면서, 더는 부모로부터 배울 ‘지식’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을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조언’이 되지 않는다. 조언은 기본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들으려 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조언도 잔소리가 되고 만다. 비유하자면 부모의 조언은 공공장소에서 울리는 남의 휴대폰에서 벨소리와 같다. 자세히 들으면 또 들어줄 만한 것이, 내가 원치 않을 때 들리니 소음으로 들리고 짜증이 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부모가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보다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실제로 부모들이 하는 조언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닐 때에도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이라면 우선 덜컥 화부터 내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이의 성별이 제법 영향을 끼친다. 만약 남학생이라면 대부분의 ‘엄마’는 조언을 삼가는 게 좋다. 사회에서 수컷들은 성년이 되어 가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자 아이는 엄마에 대해서 아주 큰 생각의 전환을 맞게 된다. 다시 말해, 남자 아이에게 엄마는 ‘나를 보호해 주는 존재’에서 ‘내가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엄마 앞에서 공연히 힘 자랑도 하게 되고 원래라면 아빠가 하던 일을 자신이 맡아 하려고도 한다.      


 귀엽고 대견하지 않은가? 모든 엄마들이 기꺼이 ‘엄마’가 되게 했던 남편의 듬직한 모습을 부모의 아이가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엄마들은 우리 아이가 사춘기가 오더니 변했다고만 생각한다. 정작 아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모르고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섣부르게 아이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남자 아이에겐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 일이다. 필자도 남자로서 말하건대, 밖에서는 여기저기 혼나고 오더라도 엄마 앞에서 만큼은 항상 당당하고 멋진 히어로고 싶은 게 아들의 마음이다.      


 아들의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아이가 가장 스트레스 받아 하는 부분을 꼬집어 조언을 하는 ‘엄마’들은 본인이 아이와의 싸움을 자초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엄마’는 한 번도 ‘아들’이었던 적이 없고 아이는 한 번도 부모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러니 엄마들은 아들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 발 물러서 있다가 적절한 조언을 아빠를 통해 전달해 주는 것이 좋다.      


 다만 이 경우에도 아빠의 말하기 방식이 굉장히 중요한데, 엄마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게 됨과 동시에 아빠를 ‘뛰어 넘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빠가 아이에게 조언을 할 때에는 아이를 최대한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꺼내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뒤에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이 아빠에게 가지는 은밀한 경쟁심을 충분히 누그러뜨리고 같은 ‘수컷’으로부터 인정받은 후에야 아들은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아이가 여학생일 경우가 있다. 여학생들은 대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몹시 꺼려한다. 위축되는 상황을 싫어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지만, 남자 아이들은 비교적 그러한 상황을 잘 마주한다. 아무래도 친구들과 짓궂은 장난을 하다 보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놓여야 하는 일이 여학생들보다 더 잦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애들은 평소에 불리한 상황에 놓일 일이 드물다 보니 자연히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놓이길 싫어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여학생인 경우 아이는 ‘왜 내 말만 안 들을까?’보다는 ‘왜 남의 말을 안 들으려 할까?’에 해당하는 질문을 가지는 편히 조금 더 적합한 질문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성급하게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이라고 느낄 때에 말을 꺼내는 것이 좋다. 대개 이런 상황 속에서는 여학생들은 정말 세상에 둘도 없을 천사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별을 나누어서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유를 듣고 나니, 아이가 왜 내 말을 듣지 않는지는 납득하신 부모들은 또 다른 궁금증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 안 듣는 아이가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들어줄까?’     


 그것은 내 아이를 남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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