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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ug 19. 2018

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이네요

프롤로그

   

  어느 일요일 밤, 나는 불 꺼진 방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땐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여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집에만 오면 우거지상이 되어버리는 딸이 울고 있다는 걸 안다면? 엄마는 속상한 마음에 딸을 다독여주기는커녕, 등짝 스메싱을 날릴 게 뻔했다. 그래서 자갈을 물었다. 아니, 두루마리 휴지를 물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새어나가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눈물이란 게, 흐느낌이란 게, 브레이크가 없다. 한 번 터지면 눈물샘이 마르고, 코가 막히고, 입안의 밀어 넣은 휴지가 축축하게 젖어야만 끝이 났다. 퉤퉤퉤. 울고 나면 시원해야 하는데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이었다.





  매주 일요일 밤, 나를 더럽게 슬프게 만든 건 회사였다. 정확히는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는 공포였다. 당시 일상은 회사생활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6시에 집을 나섰다. 회사에는 7시 10분쯤 도착하곤 했는데, 그때부터 컴퓨터를 켜고 회의할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정확히 7시 30분에 팀 회의에 들어갔다. 대략 40분간 의미 없는 회의를 한 후, 8시 30분에 직원 강당에 가야 했다. 빠짐없이 모인 전 직원은 간단한 체조 후. 매일 팀별로 돌아가며 낭독하는 ‘오늘의 좋은 글’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수와 함성. 이렇게 사무실로 돌아오면 9시다. 뭔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시작이라니.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다. 업무는 늘 그렇게 시작되니까.


  근무시간은 멘붕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당시 경력직으로 이직한 상태였는데, 텃세가 심했다. 팀은 다섯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었고, 각 파트를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었다. 나는 그중 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매니저들 사이에서 은근하게 왕따를 당했다. 예를 들면 정보가 나에게만 전달되지 않는다거나. 나도 몰랐던 나와 관련된 엉뚱한 정보가 사람들에게 퍼져있다거나. 회의에서는 네 명의 매니저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런데 팀장은 한술 더 떴다. ‘어디 네 실력 좀 보자’는 말만 안 할 뿐. 스파르타식으로 업무를 주고 다그쳤다. 마치 ‘존나게 버티는 정신력이 있나 볼까’하는 식이었다. 그 과정이 지나면 ‘내 식구’로 인정해 준다는 정보를 겨우겨우 공유받았다. 덧붙여 팀장은 지금 액션을 취하는 것뿐이니. 적당히 잘 받아주라는 조언도 얻었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고 위로되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쓰나미에 생각과 마음이 더욱 피폐해질 뿐이었다.




  무엇보다 엉망인 건.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부모님의 깃털처럼 가벼운 잔소리에도 버럭 화를 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을 흘긴다더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풀었다. 정말 최악이었다. 누군가 내게 ‘쓰레기’라 해도, 달리 항변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매주 주말이면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엄마를 대신해 조카의 손을 잡고 키즈카페를 다녔다. 그러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일요일 밤이 되면, 스트레스와 죄책감이 공포와 슬픔으로 바뀌어 나를 괴롭혔다.

  월요일 아침보다 일요일 밤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애를 써야 하는 괴로운 날보다, 멀뚱하게 누워서 '애를 쓰게 될 내일'을 기다리는 게, 더욱 겁이 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혼자 콧물을 먹어가며 숨죽이고 울던 일요일 밤. 갑자기 번쩍하고 떠오른 것이 있었다. 월요일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탈출시켜 줄지도 모를 행운. 그렇다. 바로 로또였다.  

  퉤퉤퉤. 입안 천장에 들러붙은 휴지를 뱉어냈다. 그리고 지갑에 부적처럼 모셔둔 로또를 꺼냈다. 후후후. 심호흡 후 침착하게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번호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꽝이었다.


  나는 다시 울었다. 한 시간 넘게 훌쩍거렸으면 지칠 법도 한데, 엉엉엉. 우렁찬 곡소리가 터졌다. 그때였다. 벌컥, 방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결국 등짝 스메씽을 당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딸, 대체 무슨 일이야. 엄마한테 얘기해봐.”    


  다정하고 침착한 엄마의 목소리에 꺼억꺼억 거리며 대답했다.    


  “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또 월요일이잖아!”  


  ‘얘를 어쩌면 좋을까. 불쌍한 것’ 엄마의 눈빛이 그랬다. 이어서 슬로, 슬로, 퀵, 퀵. 엄마가 울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쓰담 쓰담하더니. 있는 힘껏 찰싹 때렸다. 그리고는


  “정신 나간 가시나가! 이 야밤에 무슨 미친 짓이야!”  


  라며 화를 냈다.    

  그렇게 엄마에게 매질을 당한 후에야, 겨우, 아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또 그렇게 대책 없이 월요일을 맞이했다. 울지 않는 일요일 밤은 월요일 때문에 ‘지구의 종말’을 빌기도 했다.


  그러나 기어코 월요일은 왔다.

  

이미지 출처: 양치기 작가님 일러스트




  P.S>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최대한 격주 일요일마다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만, 자신이 없네요. 흙흙. 회사도 바쁘고 이사도 준비해야 하고. 덕분에 요즘은 '일하기 싫어증'이 아닌 '글쓰기 싫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먹고사니즘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며, 매주 일요일마다 월요병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위해 기획했습니다. 일요일 밤에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도록, 월요병 대처법에 대한 글을 8~10회 정도 올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전 월요병 없냐고요? 에이, 설마. 있긴 있는데요. 예전보다는 훨씬 잘 털어내는 편이긴 합니다.

로또는 또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이네요

  그러저나 이번주도 로또는 꽝이네요. 그러나 실망하진 않겠어요. 월요일처럼, 로또도 매주 반복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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