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Nov 26. 2018

2.‘직장생활’을 위한 뽀샤시 기능



  J가 말했다. 내 눈을 보며 또박또박.

 

  “너를 보면 옛날이 그리워.”

  “응? 무슨 옛날?”

  “나의 옛날”


  금요일 저녁, J와 나는 레인보우 케이크를 두고 마주 앉았다. 나는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당’으로 풀기 위해 포크를 집어 들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옛날’을 소환하는 J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포크를 내려놔야 할 것 같았다. 대게 ‘과거’을 소환하는 경우. 아주 기쁘거나, 아주 울적하다는 증거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나는 그녀의 ‘옛날’이 궁금했으니까.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게 된 J의 직업은 작가. 정확히는 ‘다시 작가 지망생’이었다. 사실 그녀는 공모전에서 큰 상을 받은 적도, 결국 제작되지 못한 시나리오를 작업한 적도, 드라마의 보조작가로 지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글쓰기로 밥벌이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는 다시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작가에서 다시 작가 지망생이 됐다. 그것도 6년째 말이다.

 

  이런 그녀도 회사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해서, 전공을 살려 회사에 취직했고, 경력을 쌓아 빠른 승진도 했었다. 덤으로 결혼 얘기를 꺼내는 공무원 남자 친구까지. 마치 고요하고 투명한 호수 같은 날들이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그런 날들 말이다.


  그러나 J의 생각은 달랐다. 작은 돌멩이 하나 날아들지 않는 고요함이 싫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맛보기만 해도 뭉클해지는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그랬다. 어쩐지 글을 쓸 때면, 호수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꿈은 작가다,라고. 하지만 꿈은 꿈일 뿐. 막연한 꿈보다는 눈뜨면 오감으로 달려드는 현실이 우선이었다. 현실에서의 그녀는 기계처럼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다. 출근하면 VIP 고객과 VIP 같은 상사를 응대했고. 퇴근하면 ‘결혼해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고. 외출하면 ‘이제 결혼해야 할 때’라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야 했다. 누구나 이렇게 살고 있고. 모두가 이래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넌 어떻게 살고 싶은데?”


  그러던 어느 날, J의 인생에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건 바로 당선이었다. 퇴근 후에 조금씩 끄적거렸던 시나리오가 한 공모전에서 당선됐다. 이를 계기로 영화사의 시나리오 작업 제안도 들어왔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거야. 확실히”




 그 후에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퇴사했고, 결혼을 미뤘고, 글을 썼다.


  보통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이런 작은 계기를 통해 결국 약하게 된다. 물론  사이에 고생, 좌절, 실패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J도 단단히 마음먹었던 부분이었다. 영화사에서 일하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도, 결국 자신의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지 못했을 때도, 함께 글을 쓰던 지인들의 작품이 하나둘 개봉되고 방영되기 시작했을 때도, 약간의 질투와 꽤 오래가는 복통이 있었을 뿐. 그녀를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싹트기도 했으니. 그녀는 참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에게도 6년이란 시간은 벅찼다. 직장을 그만둘 때도,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돈이 다 떨어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게 어떤 선택이건 응원해 주던 가족들의 따뜻했던 온기는, 자격지심 탓인지. 늘 눈치를 보게 되는 차가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점점 고장난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J는 자꾸만 잔잔했던 과거가 생각났다. 특히 ‘직장인의 삶’은 떠오를 때마다 한숨이 터졌다. 돌이켜보니 그 시간도 반짝반짝하던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J는 말했다. 내 표정을 살피며 또박또박.

 

  “나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야. 다만 소속감이란 채찍도, 월급이란 당근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았던 나의 시간도 돌이켜보니까.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시간은 없는 것 같아. 다 의미가 있더라고.


  그랬다. 어차피 먼 훗날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그리워하게 될 시간이라면, 그 말이 맞다.
  J의 말에 깜깜하게만 느껴졌던 나의 직장생활에 갑자기 뽀샤시 기능이 추가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이틀뿐이었다. 모든 시간이 소중한 건 맞지만, 월요일 출근길이 지옥 같은 건 바뀌지 않았다. 버스 문 앞에 매달려서 정체된 고속도로의 바닥을 보며 출근하는 것도, 밀치고 밀쳐지며 지하철에 타야만 지각을 면하는 상황도, 뽀샤시하게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많은 보정과 편집이 필요하겠지만, 직장생활을 환하게 밝혀줄 뽀샤시 기능을 계속 누를 예정이다. 이걸 다른 말로는 긍정 마인드. 또 다른 말로는 정신 승리라고 한다지만... 무엇이 되었건. 쥐똥 만큼이라도 더 행복해질 테다. 후회 없이.



 차라리 전부 회색공이었다면, 덜 허무했을 834회.


매거진의 이전글 로또는 꽝이고 내일은 월요일이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