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잖아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2

by 이하루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잖아




신혼여행에서의 부부싸움은

내 인생에 기억될 큰 사건이 됐다.

아니 싸움 됐다.


난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편이다.

게다가 고집도 센 편이다.

그래서 직장생활 중에 할 말을 다하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지금은 직장생활에서 많은 풍파를

경험한 탓에

최대한 내 생각, 의견, 사고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차피 직장생활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해)'의 상황들...


그래서였을까?

남편과 연애할 때도 직장에서처럼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빙산의 일각만 드러났던 것 같다.

그때 남편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도전적인(공격적인) 편이며
게다가 결단력(고집이 센 편)이 있다

결혼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우린 스스로는 물론 타인은 더더욱 모른다는 사실이다.




연애할 때 난 남편을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꼼꼼하고 성실하며

논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그건

나의 착각임을 알게 됐다.

평소 나는 계획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땐

대충 정보만 검색하다가

여행책을 사들고 비행기를 타 버린다.

그리고 쇼핑을 할 땐

느낌이 오는 제품이 있다면

지갑을 흔쾌히 열기도 했다.

그렇다고 능력보다 소비가 앞서는 건 아니다.

나름 매달 정해진 한도 내에서 쓰고

남은 돈은 모아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지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선물을 살 때도

지나가다가 괜찮은 물건이 보이면

아, 여자들은 저거 사다 줘야지

하고 넉넉하게 여러 개 구매를 했다.


그런데 이게 싸움의 발단이 됐다.

남편이 봤을 때는 나의 행동이

계획 없고 즉흥적인 구매란 것이다.

남편은 선물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미리 작성하고

인원에 맞게 필요한 것만 사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때 남편이 나에게 지적한 다른 한 가지는

여행 계획이었다.

우린 자유여행을 갔었는데

코스는 남편이 그리고 음식점은 내가 정하기로 했었다.

난 늘 그렇듯

인터넷 검색과 지인의 추천도 받았었다.

딱 정한 건 아니었지만,

정보를 열심히 수집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책을 가지고 가서

그때 그때 코스 주변에 있는

맛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남편은 이게 불만이었던 것이다.

미리 계획해 둔 것이 없이

그저 그때 그때 허겁지겁 식당을 찾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외에 싸우진 않았지만,

남편의 성격을 더 자세히 알게 된 대목이 있었다.

남편은 여행지의 교통편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왔었는데,

그는 내가 피곤한 기색이 보여도

끝까지 대중교통과 걷기를 고수했다.

여행 코스도 계획대로 모든 곳을 다 가야만 했다.

그때 떠오른 건

우리가 연애할 때 갔던 속초여행이었다.

그때 남편은 여행 가기 전 날

PPT로 숙소와 관광 코스를 정리해서 보여줬다.

그 자료를 보고 나는 이 남자가

나를 많이 사랑하는군 하며 피식 웃었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리고 깨닫게 됐다

그가 치밀하고(꼼꼼하고) 끈질기고(성실하고)
납득시켜야만(논리적인)하는
성격이란 사실을 말이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을 대게

스스로 만든 착각에 의해 시작된다.

그가 또는 그녀가 알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린

실망, 분노,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신혼여행에 우리의 싸움도 그랬다.

서로에 대한 착각을 알아차리면서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싸움의 본질은 다 똑같다.

네가 맞는지
내가 맞는지
두고 보자

서로가 난 맞고 넌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장연설을 하다가

언성을 높이다가

화를 낸다.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자신의 소리에만 집중한다.


그때 남편과 치열하게 싸우고 난 후

스마트폰과 신용카드만 들고

호텔을 나와서 카페로 갔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남편이 저런 사람인 줄 미리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들을 하며 씩씩거렸다.


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내가 쓴 일기를 발견했다.

내용은 언젠가 친구와 서로 감정이

상했을 때 쓴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에 이런 글을 적었다.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뿐인데
그녀(친구 이름)는 왜 항상 남을 판단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그것도 꼭 자신의 기준으로만...


일기가 내게 말해줬다.

넌 참 너 편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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