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작가 무라카미 류의 말대로라면 난 죄인이었다. 그 죄가 무거워 무기징역 감이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 자체가 노잼이었으니까. 한 예로 결혼 전에 혼자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남들은 홀로 떠난 여행에서 ‘로맨스’에 휘말리거나. 인생 자체를 새롭게 개조하는 ‘메시지’를 만난다거나. 스펙터클, 다이내믹, 앤드 어메이징 한 ‘에피소드’를 수거한다던데….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늘 자유로운 시간은 따분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터널에 불과했다.
수많은 책이 내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 용기 내라. 대담해져라. 모험을 해라. 실패를 두려워 말라. 아주 좋은 지적이었다. 다만, 도드라지는 삶을 원하지 않는 나까지 설치면 세상은 더 각박해지리라. 나라도 그 경쟁에서 빠져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은근히 지루하고 뻔한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회사-집-회사-집’의 무한 반복. 결혼 후에는 ‘회사-집-마트-집-회사-집-마트-집’의 뻔한 반복. 내가 원하는 건. 뻔한 패턴으로 살면서 즐거운 인생을 만드는 거였다. 그때는 이게 말인지 방귀 인지도 구분도 못한 채. 이런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고. 답도 후딱 찾았다.
'다소곳이 목을 빼고 기다리면 언젠가 하늘에서 뚝, 하고즐거운 인생을 내려줄 것이다. 그러니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기, 딱, 가만히 서서 기다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나이는 배부르게 먹었고. 얼굴 주름은 눈에 띄게 늘었고. 굉장히 불안해졌다.
이상했다. 분명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변화를 기다렸는데, 갈수록 불안했다. 입에 풀칠할 정도의 경제 상황 속에서 콩만 한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 이런 스몰 사이즈의 욕심은 현재를 유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라 믿었다. 그 믿음 때문에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하지만 인생을 정말 알 수 없는 것. 버려지고, 아프고, 잃게 되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벌어졌다. 순응하며 산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단한 꿈이 없는 삶이 이토록 불안할 수 있다니. 그제야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섰다.
이렇게 살다가는 무난하게 죽는다 한들, 묘비에 이런 문장이 박힐 게 뻔했다.
노잼으로 시작된 인생, 노잼으로 끝남
조용히, 내 인생이 방치되고 있었다. 어차피 불안한 인생. 스스로 즐거움을 개척해야 했다. 일단 취미가 필요했다. 내 인생에 투자가 절실한 시기. 근데 돈이 없었다. 잔뜩 대출받아서 남의 집에 사는 처지였다. 남편에게 다 맡겨놓고 혼자 룰루랄라 사표를 던질 수는 없었다. 고로 뻔한 패턴의 삶은 유지되어야 했다.
고민됐다. 지금처럼 살면서, 큰돈 들이지 않고, 삶이 즐거워지는 취미를 만들 수 있을까.일단 여행은 제외시켰다. 운동, 요리, 그림 등. 새로운 영역을 기웃거렸다. 이 과정은 나의 취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였다. 나는 같이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을 즐겼고. 역시나 좀 게을렀다. 규칙적으로 어떤 장소로 가서, 활동적으로 사람들의 틈에 껴서 배우는 건. 맞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취미를 거쳐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이 ‘글쓰기’였다.
나는 직장에서 매일 콘텐츠를 기획하고, 가끔은 스피치 원고를 쓴다.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나도 업무를 회사 밖에서까지 하는 게 싫었다. 그러나퇴근 후에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취미로 ‘글쓰기’만 떠올랐다. 싫은데 자꾸만 생각난다는 건. 소름 돋고 손발이 오글거리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에라이. 운명이네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단숨에 써지는 건 아니었다. 매일 정보를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타인의 이야기만 써왔다. 따져보니 10년간 내 얘기를 써본 적이 없었다. 에세이는 내게 새로운 글쓰기였던 셈이다. 또한 반복되는 일상을사는지라.도무지 ‘글감’이란 걸 건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모니터에 띄워둔 백지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일주일째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결국 노트북을 닫았다. 그러자 거실에 있던 남편이 물었다.
“왜 안 써?”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쓸 게 없으니까.”
“왜 쓸 게 없어?”
그가 되물었다. 상당히 거슬리는 질문이었다.
“쓸 게 있어야 쓰지. 내가 쓸 얘기가 어딨어. 아침 출근길에 지옥 버스에서 멀미 때문에 트림 나온 얘기를 쓰냐. 아니면 회사에서 또 기획안 까인 얘기를 쓰냐. 그것도 아니면 오빠랑 치킨 뜯다가 닭다리 때문에 싸운 얘기를 쓰냐.”
나는 좀 화가 났다. 그런데
“에이, 쓸 얘기 많네.”
풉. 남편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상한 건. 다음날부터 내가 진짜 그런 얘기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한 건. 그때 계약직회사생활 얘기를 가장 많이 썼는데, 차곡차곡 모인 그 글들은 내게 상도 주고 출간의 기회도 줬다. 나참. 쓰면 쓸수록 삶이 좀 재밌어졌다.
이제 일상을 글쓰기로 옮긴 지 3년이 넘었다. 어떤 날은 에잇 그만 써야지(특히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할 때도 있다. 한데 이게 오래 못 간다. 아직 더 나은 취미를 발견하지 못한 탓인지. 결국 또 무언가를 쓰게 된다. 이쯤 되고 보니 재미를 넘어 깨닫게 되는 바가 있었다. 그건 바로
노잼이라 믿었던 일상도 쓰고 보면 은근히 꿀잼
이란 사실이다.
출간을 준비할 때, 내게‘나도 쓰고 싶은데, 쓸 게 없다, 못 쓰겠다’라는 식으로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일상을 통한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약간의 흥미를 붙인다면, 글감 또한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