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Mar 21. 2019

이번 생에는 글렀다고 믿었던 글쓰기

글쓰기 팁 1. '첫 문장'에 쫄지마!  

 

  9년 전, 한 중견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경력직 이직이었으나. 홍보 업무는 처음이라, 신입사원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나를 왜 경력직으로 뽑았을까.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출근해보니 일도, 사수도, 설명도 없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내가 해야 할 건. 맨땅의 헤딩. 눈치껏 끼어들어야 했다. 일단 포털사이트에 회사 이름을 검색하여 관련 뉴스를 정독했다. 그 후 참조로 들어오는 메일을 분석 팀에서 진행되는 업무를 정리했고. 회의에서는 입 대신 귀를 열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파악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났을 때, 옆자리에 앉은 사내 아나운서가 매일 아침 신문 스크랩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은 홍보팀 막내 또는 인턴이 하는 업무였다. 어쩌다 그 일이 아나운서에게 간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팀장이 그녀에게 하는 말은 이랬다.


  “고마워요. 늘 이렇게 홍보팀 일을 도와줘서.”    


  내 업무를 발견했다. 다음날 아나운서에게 눈을 찡긋하며 내일부터 내가 신문 스크랩을 하겠다고 속닥거리자. 그녀는 


  “왜 제 업무를 하루 씨가 해요?”    


  라며 사나운 말투로 되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계약직 사내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자신의 자리가 있는 홍보팀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신문 스크랩은 그녀에게 있어 본업보다 중요한 업무였던 셈이다. 근데 내가 숟가락을 얹으려 했으니. 불쾌했던 거다.



    

  일이 없는 것만큼 괴로웠던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술자리였다. 언론사 담당자와의 술자리, 마케팅 부서와 술자리, 개발팀과의 술자리 등. 매일 벌어지는 술판에 당혹스러웠지만, 상사는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선’이란 뻔한 말로 참석을 강요했다. 덕분에 나는 매일 자정이 넘는 시간에 퇴근해야 했다. 처음에는 설마 나를 취중술병기로 뽑을 걸까? 하는 의심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사가 애주가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밀크씨슬과 두통약을 먹으며 괴로워하던 내게 상사가 업무를 지시했다.

 

  “하루 씨, 보도자료 좀 작성해요.”     


  보, 보, 보도자료? 어휴. 술 냄새. 뭐야. 아직 술이 덜 깬 건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상사의 표정을 말짱했다. 냄새만 날 뿐. 말술인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아 보였다.  

   

  “이번에 대표님이 해외에서 출간할 책에 대한 보도자료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쓰세요. 중요한 자료라 상무님이 꼼꼼하게 검토해서 피드백하실 예정입니다. 물론 대표님도 보시겠죠.”    


  순간 ‘저기요. 이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나올 튀어나올 뻔했다. 첫 번째 업무지시에 뺀찌 놓는다면 찍힐 게 뻔하다. 나의 갈등이 금방 읽힌 걸까. 그는 쐐기를 박아버렸다.     


  “하루 씨,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며? 어디 실력 좀 보자.”    

안 되는 건 더 하고 싶더라.

   갈등의 싹을 팩트로 지그시 밟아주는 상사에게, 나는 “네. 해보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맞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4년 내내 글과 관련된 공부를 했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순수문학 중심의 글쓰기를 강조하던 곳이다. 매일 소설을 읽고, 시를 쓰고, 평론을 배웠다. 덧붙여, 졸업 후에는 2년 동안 잡지사 인턴을 거쳐 신문사 기자로도 일했다. 그러나 이건 서류상 자료일 뿐이었다.  

  학창 시절 유난히도 선생님들이 ‘모지리’로 여기는 학생이 있지 않은가. 고백하면 내가 우리 과의 ‘모지리’였다. 신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구역의 ‘모지리’ 또한 나였다. 그 아팠던 나날을 300회 분량의 웹소설로 쓸 자신도 있지만, 지금 여기에는 딱 3가지 에피소드만 풀어놓겠다.      




  에피소드 1_“다음” 편      


  학교 잔디밭에서 시 창작 수업이 있었다. 시 평론 교수님께서 학생들이 낸 과제를 한 편 한 편 읽고, 신랄하게 평가를 해주고 있었다.

  ‘뭉글한 문장, 신선한 문장, 사랑스러운 문장이 잔디밭에 떨어지면 학생들은 눈을 감고, 그 문장을 더듬어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라고 쓰고 싶은데, 솔직히 난 아무 느낌 없었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내 앞에 과제를 제출한 동기의 시가 낭독됐다. 시가 좀 웃겼다.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렸다. 당시는 개성과 센스가 존중되지 않던 시대. 이에 교수님은 동기의 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건 시가 아니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남 일 같지 않았지만, 나도 같이 웃었다. 그리고 좀 안심됐다. 이런 분위기라면 나의 시는 무난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내가 쓴 시를 교수님이 읽었다. 웃는 아이들도 없었고, 교수님도 꽤 심각하게 내 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어진 평가.    


   “다음~”     

싫으면 싫다고 해죠. 침묵이 더 무서우니까.

  자지러지며 웃는 아이들이 보였다. 나도 그 웃음에 동참했다. 같이 웃지 않으면 진짜 쪽팔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14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 내 앞에 읽힌 동기의 시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잠깐 소개해 보겠다.

        

    

              아무개    

    

빵이 먹고 싶다.

빵을 먹으면

배가 빵빵해질 것 같다.    

빵을 먹었다.

빵을 먹으니

배가 진짜 빵빵해졌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이 시를 쓴 동기에게 졌다. 자체 평가로 끝내고 싶기에, 내가 썼던 시는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다.               



      

  에피소드 2_‘공주님’      


  종강 파티가 있던 날이다. 동기들과 함께 교수님을 모시고 낡은 술집에 자리 잡았다. 삶, 사랑, 미움, 두려움 등. 사람과 감정에 대한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이런 대화에 좀 약한 편이다. 뭐랄까. 공감을 못 하는 건 아닌데 표현력과 말발이 부족하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놓이면, 늘 겉도는 것처럼 오해받을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교수님이 이렇게 말했던 걸 보면.     


  “너 같은 애들은 글 쓰면 안 돼.”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았다. 교수님이 취했다고 판단했고. 이럴수록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물었다.     

얼굴이 공주가 아니라 태도가 공주였다

  “왜요?”

  “너한테는 상처가 안 보여. 너처럼 넉넉한 집에서 사랑만 받고 자란 공주님 같은 애들은 글 못써. 넌 글 쓰지 마라. 공부하거나 기술 배워서 취업해. 알겠어?”

   

  교수님은 점 집 차리면 큰일 나겠군, 싶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부모님이 이혼하려는 중이고, 아버지 사업은 곧 부도가 날 것 같고, 월세 집에 살면서 아르바이트 중이고, 어쩌면 학교를 졸업하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고, 이 와중에 남자 친구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며 더 크게 웃어 보였다. 아마도 이 장면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교수님이 모지리 란 말 좀 들어봤지?”라고 물어보게 된 계기 말이다.




 에피소드 3_‘직장 학교’ 편       


  학교에서 글쓰기로 구박을 받았건만, 졸업하고 기자가 됐다. 그때는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은 등단하거나, 공모전을 준비하거나, 대학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취업도 출판사, 방송국 작가, 광고회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상하게도 기자로 빠진 동기가 많지 않았다. 나름 빈틈 시장을 노렸다고나 할까. 조금 의아한 건. 당시 입사시험에서 기사 작성 능력이 큰 비중을 차치했는데, 내가 합격을 했다는 것이다. 어쨌건 나는 그렇게 취업을 했고. 글쓰기 악몽은 출근 첫날부터 다시 시작됐다.     


  첫 업무는 칼럼을 다듬는 일이었다. 선배는 ‘친한 취재원이 쓴 거니까 신경 써’라고 했고. 나는 종일 그 글과 씨름을 했다. 왜냐하면, 그 칼럼은 ‘읽기 힘들 글’이었기 때문이다. 칼럼을 쓴 분의 높은 지적 수 충분히 느껴지긴 했지만. 짧은 글에 전문용어, 한자어, 영어가 가득했고. 글의 주제는 마지막 마침표가 찍히는 그 순간까지도 오리무중이었다. 문제점이 파악됐지만, 글을 다듬는 건 기술이 필요했다. 글을 쓴 사람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주면서, 독자가 읽기 쉽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야! 너 학교에서 뭐 배웠냐?”    


  리라이팅 한 칼럼을 확인하던 선배가 화를 냈다. 이 사람이 형편없이 글 쓰는 건 알겠는데, 넌 문창과까지 나왔다는 얘가, 더 형편없어 보이게 고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그날 선배에게 혼나고. 혼자 건물 계단에 앉아 입을 틀어막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이를 갈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날이 꼭 있지

  “야! 너 여기가 학교야? 내가 가르쳐 줘야 해?”

  “야! 문창과 나온 거 맞아?"

  “야! 너 학교 가서 다시 공부하고 와.”


  입사 후 6개월 동안은 글쓰기로 매일 혼났고. 처음 울었던 그 계단은 내게 ‘눈물의 계단’으로 불리게 됐다.     




  이직하고 기뻤던 건 ‘글쓰기’를 덜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첫 업무가 보도자료라니. 미치고, 팔짝 뛰고, 거꾸로 돌아서, 공중회전 열 번을 할 뻔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야근하며 다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번 생에 글쓰기는 글렀다. 정확히 글쓰기를 잘하기는 글렀다고 믿었다.     


  당시 상무님은 언론사 문화부에서 20년 넘게 근무하셨던 분으로, 홍보실에선 ‘빨간펜 선생님’으로 통했다. 보도자료를 제출하면 기본 10~20번 정도 퇴짜를 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솔직히 다들 치가 떨려서, 은근슬쩍 신입인 내게 떠넘긴 느낌이었다. 팀장님께 제출한 보도자료가 상무님께 올라갔다고 했을 때, 제발 내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문사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모르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쓴 첫 보도자료는 상무님께 겨우 2번 퇴짜를 맞고, 바로 언론사에 뿌려졌다. 사람들이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내가 사실은 글쓰기에 재능이 좀 있나?’ 착각의 늪으로 기어들어 갈 뻔할 때쯤, 상무님의 호출이 있었다. 개인 면담이었다. 내가 보도자료를 전담하게 되는 건가? 망상이 추가됐다. 그런데 상무님은 내게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완벽하게 잘 써서 통과시킨 거 아냐. 하루 씨가 아침부터 밤까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작성하고, 제목도 여러 개 뽑고. 열심히 해줘서, 그 노력이 예뻐서. 통과시켰어.”    


  상무님이 내 글을 통과시킨 건. 실력이 아닌 태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기뻤다. 부끄럽게도 글을 쓰며 받은 첫 칭찬이었다.    


   의외로 ‘빵’이란 시를 쓴 동기도 아직 글을 쓴다. 어쩌면 우린 ‘잔디’ 같은 녀석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밟고 밟아도 밟히지 않고 꾸역꾸역 글을 쓰는 ‘글 잔디’랄까. 

  글쓰기를 전공하고도 모지리 소리만 들었던 나도 계속 쓰고 있다. 그러 쓸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그냥 쓰시길!



 꿀팁 없는 글팁 1 


  ‘첫 문장’에 쫄지마!    


  ‘첫 문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글쓰기 책이 참 많다. 나도 끄덕끄덕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 러. 나 가끔 ‘중요한 것’은 ‘어려운 것’이 되기도 한다. 특히 글쓰기 초보자나 나처럼 ‘글쓰기 싫어증’에 자주 빠지는 이들은 더욱더 그렇다. 막연하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첫 문장이 잘 써지지 않아, 노트북을 닫아버릴 때가 있다. 또는 첫 문장에 힘을 줬더니, 기운이 빠져서 다음 문장이 써지지 않을 때도 많다.


  나는 글쓰기 초보자에게 ‘첫 문장’에 힘을 빼지 말라고 한다. 장르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문장이 아닌 이야기를 읽는다. 때문에 ‘첫 문장 쓰기’에 고민할 에너지로 ‘이야기를 끝내는 경험’을 늘리라고 말한다. 글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초고는 퇴고를 반복할수록 반듯해지고, 문장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수록 빛나기 마련이다. 초보자가 초고부터 문장에 집착하다 보면, 특정 문장을 지키기 위해 주제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실수까지 하게 된다.


 첫 문장에 힘쓰지 말고 일단 쓰자는 말. 말은 쉽다. 그래서 준비했다. 첫 문장이 막힐 때 내가 활용하는 몇 가지 글팁! 물론 꿀팁은 아니고 흔히 쓰는 방법이다.     


< 문장을 시작하는 5가지 방법>


1. 결정적 순간부터 써보자

     다짜고짜 등장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궁금증을 유발함

2. 그날의 날씨 또는 사건의 장소를 묘사하

     계절과 장소에 의한 에피소드에서 많이 사용함

3. 기억에 남는 말부터 써보 

     사건, 인물,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임.

4. 인물의 성격, 외모, 습관을 묘사해 보

     캐릭터가 잘 표현되면 사건의 개연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음

5. 이도 저도 어렵다면, 인용문은 어떨 

     주제와 어울리는 인용문은 글의 맵시를

      팍팍 살려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