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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pr 11. 2019

면접 중에 눈물이 났던 건

글쓰기 팁4. 안 읽히는 글을 쓰려면


  “떨어지겠지. 떨어질 거야.”    


  C 회사 서류전형에 격했다. 남은 건 포트폴리오 제출과 면접. 회사 위치도 가깝고, 연봉도 괜찮고, 정규직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서류를 접수할 때부터 99.9% 포기한 상태였다. 그냥 한 번 써보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 입사지원서를 펼쳤고, 작성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 지원서는 제출하는 순간까지도, 읽고 또 읽었다.


  ‘면접은 2시부터 시작이지만, 30분 전까지 도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2주 후, 서류전형 합격과 면접 안내가 담긴 메일을 받았다. 한창 회사가 바쁜 시기. 면접에 가려면 당장 물밑작업 들어가야 했다. 업무 조율, 출장 일정 정리, 연차의 이유 등. 이직의 낌새를 감추기 위해 당분간 표정, 행동, 말투도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상사의 노잼 개그에도 박장대소하고, 비효율적인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제조하는 회사 험담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일요일 마산 출장에 투입됐고. 면접이 있는 월요일에 연차를 쓸 수 있었다. 계획적인 출장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건 월요일 새벽 2시. . 과한 물밑작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 있었다. 평소처럼 쌀쌀맞은 태도로 당당하게 연차를 요구할걸. 어쭙잖은 애사심 작전으로 몸과 마음 쑥대밭 됐다.  




  연차지만 상쾌하지 않은 월요일 아침. 비몽사몽 한 상태로 면접  준비를 했다. 어차피 화장에는 재주가 없고, 머리 손질도 서툴고, 번듯한 정장도 없다. 비비크림과 파우더를 바른 후, 눈썹 사이 빈틈을 채우고,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옷은 하얀색 셔츠와 밤색 카디건, 검은색 정장 바지,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구땡에서 산 유일한 명품가방을 들고, 납작한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신발장 앞에서 내 모습을 점검했다. 피곤한 얼굴 탓인지. 칙칙한 패션 탓인지.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 막, 방금.


<막돼먹은 영애 씨>의 라 부장과 도플갱어 같았던 그날의 모습

    

  도착한 C 회사 건물은 외관이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좀 묘했다. 어렴풋이 안을 들여다보이는 유리 건물은 주변의 시멘트 건물보다 듬직해 보였다. 아마도 압도적인 귀티 때문일 터였다. 자고로 사람이건 건물이건 첫인상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어떻게 오셨죠?”    


  유리문을 통과하자마자 안내소 직원이 내게 물었다. 순간 “버스 타고 면접 보러 왔어요”라고 하려다가. 낯선 사람에게 쓸데없는 말은 생략하기로 했다.     


  “면접요.”    


  그는 출입증을 받아야 하는 1층으로 나를 안내했고. 돌아서며 이렇게 속삭였다.


  “오늘은 다 여자분들이네요.”    


  나는 대꾸 없이 미소를 지었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여자.

  일정이 늦어지면서 모든 면접자가 한 장소에 모여 있게 됐다. 다들 곁눈질로 서로를 의식하며 면접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눈을 감고 고민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받게 되지만, 매번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  정해야 했다.


  “임신 계획 있어요?”     


  곤란했다. 대부분 회사에서 궁금해하는 ‘나의 임신 계획’이, 나는 참 곤란했다. 결혼 5년 차. 우리 부부가 계획대로 살았다면 벌써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 했고. 그 집에 남편, 나, 3살 된 예쁜 딸이 까르르 거리며 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린 지금 경기도 외곽에 살면서 난임 병원을 옮겨야 하나? 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임신 계획이란 질문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다. 거대한 회사가 점에 불과한 나의 사적인 계획과 미래가 궁금할 리가 없다. 그들은 대답을 통해 얼마나 회사에 충성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두 가지뿐이다. Yes Or No.    


  “네, 계획이 있습니다.”    


  솔직해지고 싶었다. 5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계획이 없는 건 아니고, 앞으로도 쭉 아이가 생기지 않을 거란 확신도 없다. 어쨌든 생기면 낳아서 잘 키워볼 참이다. 이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겠지. 물론 이런 대답을 좋아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그들로서는 임신 후 퇴사하는 모습. 출산 후 눈치 보며 출퇴근하기 바쁜 모습만 그려질 테니까.    


  “아니요. 계획 없어요.”    


  뻥 쳐야 할 순간과 뻥 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구분되지 않느냐는 지인의 조언을 참고해, No라고도 해봤다. 그러자 한 면접관이 이렇게 되물었다.    


  “인생이 맘대로 됩니까? 계획대로 되냐고요?” 


  안다. 내가 다른 지원자와 비교해 월등한 이력과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었다면, 저런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비교 불가 인재였다면 고민 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전 임신 계획이 있는데요. 이 회사는 출산하는 직원을 위해 복지를 개선할 계획이 있나요?”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빨리 해요, 우리


  내 순서는 마지막인 네 번째였고, 2시가 아닌 4시에 면접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갑자기 한 면접관의 외부 일정으로 인해 시간이 늦춰졌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세 시간을 기다린 셈이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깜짝 인내심 테스트’를 의심했으나. 안내하는 직원들의 난처한 표정으로 미루어볼 때 그렇게까지 앙큼한 회사는 아닌 것 같았다.    


  대회의실에는 세 명의 면접관과 세 명의 인사팀 직원이 앞뒤로 앉아 있었다. 나를 굽실, 굽실, 굽실. 모두에게   고개를 숙인  자리에 착석했다. 한 사람당 30분씩 면접을 본 탓일까. 기다린 건 난데, 면접관들이 더 지쳐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곧 C 회사 콘텐츠기획팀으로 출근할 이하루라고 합니다.”    


  살짝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자기소개를 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다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이력서만 보고 있었다.

  우리 회사가 어떤 곳인지 소개해 봐라.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에 대해 말해봐라. 만약 입사한다면 어떤 플랫폼에 어떤 콘텐츠를 만들 거냐, 와 같은 뻔한 질문만 하던 한 면접관은 내가 답변하는 동안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순간, 쭈글쭈글, 꾸깃꾸깃. 구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을 더듬거리고, 손짓이 어색해지고, 급기야 이마에 땀이 맺혔다. 송골송골. 방울방울.


  그때 느꼈다. 아, 나 이 회사에 합격하고 싶구나. 떨어질 거란 말과 달리 좀 간절하구나.    




  “궁금한 부분이나 따로 할 얘기 없어요?”    


  4시 30분이 되어갈 무렵. 한 면접관이 물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란 뜻이었다. 이상했다. 오늘은 내게 임신 계획 따위를 묻지 않았다. 그저      


  “결혼한 지 얼마나 됐죠?”    


  라는 질문이 전부였다. 이력서에 기혼이라고 쓰여 있고. 가족 사항에 자녀가 없다는 표시되어 있을 텐데, 왜 묻지 않지? 갑자기 불안했다. 무엇이든 말해야 했다. 그러다     


  “사실 제가 아이가 없는 기혼자다 보니, 면접을 볼 때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자꾸 물어보고 걱정하시는데요. 혹시나 우려하신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제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거든요.”          


  순간 뇌가 하얗게 탈색된 느낌이었다. 도대체 난 어쩌자고 저딴 말을 꺼낸 걸까. 그때였다.    


  “다른 회사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을 하던가요? 궁금하네요?”

  “네?”     


  시계를 보던 면접관이었다. 나는 뭔가에 단단히 홀린 것처럼.    


  “임신 계획이 있는지. 주말 근무는 가능한지. 지방 출장은 가능한지. 운전은 할 수 있는지. 갑자기 아이가 생기면 회사는 관둘 건지…. 저 역시 제 일이 좋아서 열심히 해 왔는데, 업무에 대해, 저 자신에 대해 말하는 시간보다, 그 외적인 부분에 대해 해명하고 또 해명하고, 다짐을 보여주는 듯한 대화를 해야 할 때면….”    


  마음에 뭉쳐둔 이야기를 꺼냈지만, 끝까지 말하진 못했다.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시야가 흐려졌다. . 뜨거운 볼 위로 더 뜨거운 액체가 흘렀다. 그때 알았다.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목소리는 콧물로 인해 꽉 막혔다. 상황이 수습될 것 같지 않았다. 망했다. 하지만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너무 죄송합니다.”    


  이렇게 쓸데없이 강렬한 인상인 남긴 면접은, 내 인생에서도, 면접관들에게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진짜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눈물이 나네요.


  면접이 끝난 후,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오다가 또 안내소 직원과 마주쳤다.     


  “면접 잘 봤어요?”    


  그 예의상 던진 질문에, 다시  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랐다. 낯선 사람 당황스럽.


  C 회사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도착까지 25분 전’이란 전광판 안내에 한숨이 터졌다. 앞으로 25분이나 더 회사 건물과 마주 보고 있어야 했다. 면접장에서는 땀까지 흘렸던 것 같은데, 밖은 겨울이었다. 뜨거웠던 볼과 눈이 금방 식어버렸다. 오늘 내가 저지른 일들을 떠올렸다. 창피했다. 하지만 시원했다. 마치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랄까. 사우나에 다녀온 느낌이랄까.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쏟아진 눈물은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괜찮다 생각, 어쩔 수 없다고 믿고, 포기하지 않았 0.1% 희망, 사실  아팠다.

  



꿀팁 없는 글팁4 

안 읽히는 글을 쓰려면


  예전에 다녔던 회사는 매년 수필 공모전을 열었다. 유명한 공모전도 아니고, 지원자 제한도 있었지만, 늘 500편 정도의 작품이 접수됐다. 제출은 인터넷과 우편 모두 가능했지만, 가끔 원고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작품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막내인 내가 접수를 도왔는데, 봉투에 담긴 원고를 넘기기 전까지 자신의 품에 꼭 안고 있는 사람 많았다. 그때마다 새삼 글이 가진 초능   있었다. 글은 크기와 무게 제한 없이. 모든 마음과 생각을 넣을  있고, 다 담 후에도 크지 않고 무겁지 않아. 품 안에 쏙 들어왔다.

   나는 자신의 세상  원고를 내게 건네준 분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가져다줬다.


  하지만 공모전은 경쟁이었다. 작품을 제출한 모든 사람에게 상을   없었다.

  수상작품은 세 차례 심사를 통해 결정됐다. 1차는 부서에서, 2차는 시인과 수필작가님이, 3차는 작가님들과 사보 편집위원이 맡았다. 덕분에 아무런 자격이 없는 나도 1차 심사에 참여했고, 접수된 500여 편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재밌었다. 업무 중에 대놓고 딴짓을 하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점점 힘들고 괴로운 업무가 되어버렸다. 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심사 기준표에 여러 가지 항목에 대한 점수와 관련 내용을 작성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글을 끝까지 읽어야 했다.


  10포인트 글씨로 작성된 A4 3페이지의 분량의 글은 읽기에 부담이 없다. 아니, 없다고 믿었었다. 많은 작품을 읽어보니 읽기 힘든 글도 꽤 많았다. 그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크게 세 가지  가지고 있었다.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멋짐 뿜뿜이네!

  간혹 문장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수식어 과잉, 조사 과잉, 감정 과잉 등. 과한 문장이 멋진 문장이 믿는 것인데. 무엇이든 과하면 부담스럽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에 잔뜩 힘을 준 글은, 읽기 힘들다. 예를 들면 “회색빛이 감도는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쏟아져 내리는 날이면, 텅 빈 내 마음 황량한 사막처럼 쓸쓸한 고독감이 밀려와서 처절하 비참하게 외로워진다.” 이런 식의 문장이다. 사실 “비 오는 날은 좀 외롭다.”라고 써도   전달된다. 문장에도 힘 조절이 필요하다. , , , , 강, 약~


  둘. 의식의 흐름대로 이해가 안 가!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라도 일단 쓰는 게 낫다. 자꾸 쓰다 보면, 여러 번 퇴고하다 보면,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글쓰기는 늘 수밖에 없다. 안 쓰는 것보다 일단 쓰는 걸 추천한다. 그러나 의식의 흐름대로,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써낸 글은 일기에 가까울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 읽히 하는  쓰고 싶다면, 나부터 냉정 독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  글의 구성, 문장, 주제에 대해 따져보는 게 좋다.

  일기와 에세이 구분해야 한다. 일기가 내 감정을 남기는 글이라면, 에세이는 내 이야기 감정 전달하는 글이다.           


  셋. 맥을 짚을 수가 없어! 

  사건, 등장인물, 주제가 중구난방인 경우다. 쓰다 보면 엉뚱한 길로 빠질 때가 있다. 특히 애정이 가는 부분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조연 또는 엑스트라일 뿐인데도, 마음 쓰여 과하게 집중해서 쓴다. 불필요한 인물, 정보, 기억, 감정은 과감하게 가지치기할 필요가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처럼. 이야기와 관련 없는 부분을 장황하게 보여주면, 맥을 짚을 수 없는 글이 되고 만다.   


  쓸모없는 이야기는 없다.  안 읽히는 글만 있을 뿐이다. 천천히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평범한 일상  글도   책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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