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었다. 불 꺼진 실내의 유일한 불빛은,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야경뿐이었다. 늘 ‘서울의 밤’은 화려했다. 하지만 그날의 밤은 고요했다. 촘촘하게 세워진 빌딩, 그 사이를 꽉 채운 사람들, 그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한강까지. 늘 활기 넘치던 도시가 잠잠했다. 엄마와 함께 본 ‘서울의 첫 야경’은 이랬다.
훗날 생각해보니. 그곳이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2인 병실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밤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조용한 서울 야경은 ‘수술을 기다리는 엄마’에게 무엇이든 묻고 싶게 만들었다.
“엄마, 무서워?”
“...”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뇌수술’이란 단어가 주는 공포를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이 상황을 자신보다 딸이 더 무서워하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도, 수술한다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20대 후반이었던 딸은 그렇게 철이 없었고. 담담하지도 못했다.
“나 한 번도 머리 밀어본 적 없는데, 걱정이다. 못생겨 보일까 봐.”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늘 딸보다 여성스럽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엄마였다. 나는 눈치가 있는 편이다. 엄마는 머리 모양 따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무섭다는 말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런 감정을 딸에게 숨기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다. 살가운 딸은 아니지만, 내게도 괜찮은 구석은 있다. 자연스럽게 모른척해 주기. 이게 나의 장점이다.
“엄만 왜 맨날 짧은 스타일만 고집해? 단발도, 긴 머리도, 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엄마의 시선이 내게 옮겨졌다.
“긴 머리는 관리하기 힘들고, 주책맞아 보이잖아. 물론 나는 얼굴이 예뻐서 짧은 머리도 자신 있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니.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없었다. 친구에게는 다양한 스타일을 권하는 내가, 30년 가까이 한결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엄마에게 의문을 품지 않았다니. 좀 늦은 감이 있으나. 긴 머리를 하면 어떨까. 엄마를 보며 상상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그려지지 않았다. 환자복을 입은 수척한 엄마의 얼굴 위로, 윤기 나는 긴 생머리를 그려본다는 게, 어려웠다.
결혼도 했고, 곧 3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엄마가 될 내가 그려지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창의성이 부족한 딸은, 좋은 딸일까? 나쁜 딸일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찔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답을 찾는 것보다. 내가 나쁜 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쪽이 빨랐다.
내 인생의 팔할을 함께 살아온 엄마에게, 묻지 않은 게 많았다. 수술하기 3주 전에도 그랬다. 지방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밤 11시. 불을 켜지 않고 식탁에 홀로 앉아 있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엄마는 화난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나 때문이었다.
그날 여러 번 전화가 왔다. 엄마는 들어올 때 두통약 좀 사 오라고 했다. 평소라면 흔쾌히 대답했겠지만, 지방이었다. 언제 집에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약국은 집 앞에만 두 군데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1층. 문 열고 현관을 나서면 약국이 보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벽에 지방 출장 간 딸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아빠, 오빠를 두고 늘 내게만 부탁하는 엄마에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식탁 위로 거칠게 뜯긴 타이레놀 상자가 보였다.
“나왔어.”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신경 쓰여 멈춰 섰다. 약을 사다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할까. 아니면 일찍 올라올 수 없었던 이유에 관해 설명할까. 어떤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뻔했다. 어떤 말이건. 엄마는 화를 낼 것이다. 내게도 힘든 하루였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야! 이 나쁜 계집애야! 넌 어떻게 엄마한테 왜 아프냐? 아직 아프냐? 어디가 아프냐? 이런 걸 안 물어보냐? 저것도 자식이라고! 너 낳고 미역국 먹은 내가 불쌍하다.”
엄마의 목소리는 깨지는 유리처럼 날카로웠고.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나도 할 말이 많았다.
“왜 나한테만 그래? 나 오늘 새벽부터 지방 출장 다녀왔잖아. 나도 힘들어. 종일 사람들 인터뷰하고, 억지로 웃고, 쓴소리 듣고, 잡다한 거 다 챙기고. 피곤해 죽겠어! 근데 엄만 왜 맨날 나한테만 부탁하고. 나한테만 화풀이해? 나도 힘들고 아프다고!”
참아왔던 감정이 터졌다. 몸과 마음이 욱신거렸다.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렸을 때는 아들부터 챙기던 엄마가, 이제는 딸이 최고라고 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엄마의 뇌혈관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됐다. 아빠와 함께 들어간 진료실에서였다.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빠와 내게 의사는 쉽게 설명했다.
“화내거나, 흥분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부풀어 올라있는 이 뇌혈관이 터질 수 있어서 정말 위험해요. 최악의 경우 사망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일찍 알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수술은 잘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말없는 아빠를 대신해 나라도 다행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화를 냈던 그 밤의 기억이 입을 굳게 잠가버렸다.
수술하기 전날. 퇴근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 대신 엄마 옆에 있기 위해서였다. 단둘이 보내는 밤은 오랜만이었지만, 우린 말이 없었다. 드라마를 보다가 불을 끄고, 엄마 침대 밑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다가. 일어나 창을 내다봤다. 솔직히 조용한 병실에서 내려다본 서울 야경은 참 예뻤다. 정말 예뻤다. 그래서 겁이 났다. 친구들과 질리도록 봤던 서울의 밤을, 엄마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몸을 일으켜 침대를 올려다봤다. 엄마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묻고 싶었다. 이 밤이 아니면 엄마를 인터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그날의 인터뷰는 자정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많은 걸 물었고. 엄마는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에 관해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마지막 대답은 이랬다.
“엄마는 괜찮아. 그러니까. 여기 침대로 올라와서 같이 자자.”
당연한 관계, 다 안다고 믿는 관계, 언제든 내 편인 관계. 사실 ‘진짜 질문’이 필요한 건 이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는 없다. 소중할수록, 사랑할수록,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대답해 줘야 한다.
꿀팁 없는 글팁6
등잔 밑이 새롭다
여전히 글쓰기에 자신이 없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글쓰기가 좀 편해졌니?”라고 묻는다면 “인터뷰 글을 쓴 후”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대학 시절 글쓰기가 힘들었던 건. ‘글쓰기=창작’에 대한 오해 탓이다. 타고나길 빈약한 상상력인데, 혼자 방구석에서 이야기를 쥐어짜며 쓰는 게 괴로웠다. 분량은 상관없었다. 200매 소설도 15매 에세이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툭, 던져지는 주제와 내 삶의 교집합을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부담스러웠다. 이야기 생산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졸업 후, 한 회사의 매거진 팀에서 인턴을 하게 됐을 때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이야기를 찾아내기 어려워하는 내가 글을 써서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글쓰기에 엄청난 부담을 느껴야 할 내가, 별 탈 없이 원고를 쓰고, 마감을 지켜내고 있었다. 처음엔 월급의 힘이라 믿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일을 관두고 생각해보니 ‘인터뷰’ 덕분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야기는 쥐어짜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시간 투자로 특별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글감은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발견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일상 속 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화에서 중요한 건 ‘낄끼빠빠’다. 인터뷰가 도움이 됐던 건.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상대가 더욱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도록 질문한 덕분이다. 나는 이때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낄끼빠빠 대화법’을 배웠고. 이런 대화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글감을 줬다.
우린 하나의 세계에 사는 것 같지만,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는 낯선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진짜 그렇다. 다 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도 내가 아는 모습보다 모르는 모습이 더 많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 속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면이 있다. 사실 우리의 등잔 밑은 새롭다.
인생이 따분해서 쓸 이야기가 없다는 건. 아직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귀를 열고, 질문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