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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y 16. 2019

로또명당, 당첨요정

보통날 28일 차


  빼꼼, 열린 문틈 사이로 하얀 연기가 새어 나왔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문으로 다가갔다.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두고 까치발을 들어 안을 살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한 평이나 될까 싶은 공간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할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한 발 더 내디딘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갇혀 있던 연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드디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저, 콜록, 콜록, 지, 지금 로또 좀 살 수 있을까요?”    




  그곳은 출근길에 지나치는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작은 박스형 매점이자. 로또명당이다. 대체 몇 시에 문을 여는 건지. 오전 10시에 그곳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셔터가 굳게 내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호기심이 발동된 건. 가게 옆에 붙어 있는 종이들 때문이었다.     


  ‘0월 0일

  000회 1등 당첨!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0월 0일 기준

  2등 당첨 총 0회!

  모두 모두 축하합니다!’    


  ‘당첨 확률이 높은 로또의 명당!’    


  비뚤배뚤 쓴 글씨, 누렇고 꾸깃꾸깃한 종이, 너덜너덜한 테이프, 번져있는 잉크까지. 딱 봐도 아무 종이에 대충 써서 붙인 것 같은데, 왜 난 이걸 볼 때마다 신뢰감을 느끼는 걸까. 낡고 오래된 가게가 맛집일 거란 믿음과 비슷한 게 아닐까. 어쨌든 꼭 한 번 이곳에서 로또를 사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온 지난 6개월간 매점이 열려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종이가 바뀌는 걸 보면, 분명 문을 열긴 연다는 건데. 내가 지나갈 땐 늘 닫혀 있었다. 퇴근할 때는 다른 경로로 가거나. 매점과 반대편에 있는 정류장에서 긴 줄을 서서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탓에, 굳이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고, 이건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 명당과 나는 인연이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포기하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주인장이 드나드는 옆 쪽문이 살짝 열려있던 것이다.


  사실 로또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난 늘 명당 주인장이 궁금했다. 정확히는 당첨요정을 직접 영접하고 싶었다. 기분대로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 펜을 골라 당첨 소식과 함께 ‘축하합니다’란 문장으로 써내린 글에는, 주문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더 많은 사람이 당첨되길 바라는 진심을 담은  주문!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당첨요정은 담배를 좋아하는 할아버지였다. 막연하게 그려봤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가게 안에서 흡연하는 요정일 거란 생각은 못 했지만 말이다.     




  담배 연기가 가득한 매점 안에서 주인장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당첨자가 탄생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찢어진 종이를 교체할 모양이었다.

   


  오픈 전부터 들이닥친 손님이 귀찮을 텐데, 할아버지는 말없이 로또를 뽑아서 줬다. 그리고는 돈을 건네는 내게 당첨 주문을 걸어줬다.


   “꼭 당첨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돌아서려는데 고민됐다. 내가 연 이 문을 다시 닫아야 할까, 그대로 둬야 할까. 당첨요정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한 손에는 담배 또 다른 손에는 펜을 들고,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문을 열어뒀다.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당첨요정 할아버지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나저나 올해 들어 로또는 계속 꽝이다. 이번 주는 당첨요정 말대로 오천 원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아니다. 어떻게 산 로또인가. 밑도 끝도 없이 욕심내서 할아버지의 축하를 받고 싶다. 만약 당첨된다면 파란색 글씨로 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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