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Nov 15. 2019

3등만 하게 되는 이름

이미지 출처: 요즘 즐겨보는 <무엇이든 물어보살>



  “12월 1일부터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인상됩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저 말이 나를 움직였다. 돈이란 게 이렇다. 1년 가까이할까 말까 고민했던 일을 하게 만든다.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가격이 저렴할 때 쟁여두고 싶은 마음. 나는 이런 마음으로 작명소에 다녀왔다. 당장 바꾸지 않을 이름을 쟁여두기 위해서 말이다.



     

  2019년 1월, 친구들과 사주를 보러 갔었다. 연례행사처럼 늘 해왔던 일이다. 올해는 밑도 끝도 없이 대박이 터질까. 더는 이런 게 궁금하지 않다. 곧 30대 후반이 되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탈한 한 해’다. 제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주를 본다. 다른 해와 달랐던 것은 철학관이나 무속인을 찾아간 게 아니라 ‘작명소’로 향했다는 거다.


  사주 보는 곳을 소개받을 때면 무용담이 따른다. 이혼한 걸 단번에 알아맞혔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직업을 알아내더라. 올해 임신한다고 했는데 진짜 했어. 엄마 건강이 염려된다길래 종합검진 받았는데 암이었어. 이런 식이다. 내가 소개받은 작명소도 비슷했다. 


  “여기서만 집이 팔린다고 했데요.”     


  이사하기 위해 내놓은 집이 몇 달 동안 팔리지 않아 마음고생했다던 지인의 지인.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서 사주를 봤단다. 답은 한결같았다. 올해는 절대 집이 안 팔린다. 성난 조상님이 집 앞을 지키고 있으니 일단 화를 풀어줘야 한다. 가는 곳마다 포기를 권했다. 한데 마지막으로 찾아간 작명소에서만은 다른 얘기를 들려줬단다.     


  “안 팔리긴 왜 안 팔려, 다음 주라도 당장 팔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녀 동생이 만나는 남자가 나이가 많다는 것과 부모님 지병까지 딱 짚어냈다. 물론 결정적인 건 다음 주에 진짜 집이 팔렸다는 것이다.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들어선 작명소에는 몇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작명가는 문을 떼어낸 방에서 중년 여성 사주를 봐주고 있었다. 개인정보에 취약한 곳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엿듣는 것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 인생을 듣게 될 것도, 모두 불편했다. 망설이는 사이 친구들이 먼저 접수를 하러 갔다. 나만 탐탁지 않은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아가씨 내 팔 깁스 보이지? 내가 경사가 심한 계단에서 무차별적으로 굴렀거든? 근데 손목만 다쳤어. 딴 데는 다 멀쩡하고. 이게 다 저 선생님 덕분이야. 여기 진짜 잘 봐.”     


  혹시 영업을 위해 심어둔 배우는 아닐까. 잠시 의심이 들었으나. 사주를 보는 비용은 겨우 사천 원이다. 의심을 거뒀다.

     

  “능력과 노력해 비하면 결과가 터무니없네. 맨날 3등이야. 죽어라 해도 3등, 대충 해도 3등, 그냥 3등 인생이네.”     


  작명가는 내 이름이 사주와 맞지 않아 3등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 말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괜히 이름을 바꾸게 하려는 수 같았다. 한데 과거를 떠올려보니 내 인생 대부분 3등이었다.      


  늘 어중간했다. 어린 시절 미술대회에 나갔다. 그날따라 그림이 잘 그려졌다. 지나가던 선생님도 “이게 대상이네”하고 칭찬을 했다. 결과는 은상이었다. 대상, 금상, 은상 순서였으니 3등이었던 셈이다. 글을 쓸 때도 그랬다. 늘 입선과 은상이었다. 심지어 제비뽑기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한 번 당첨되면 3등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린 시절 백화점에서 진행된 이벤트에 당첨된 일이다. 함께 쇼핑 갔던 엄마가 당첨 확률을 높이겠다며 내 이름을 적은 응모권을 넣었는데, 이게 또 3등이 됐다. 상품은 배추였다. 엄마와 나는 신나게 버스를 타고 백화점에 갔다가. 낑낑거리며 배추를 들고 오느라 얼굴이 배춧속처럼 노래졌었다.     


  “운이 터질 듯 안 터지고, 일이 될 것 같다가 안 되고, 뭔가 자꾸 끊어져. 이게  다 이름 때문이야.”      


  살면서 이름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솔직히 이름이 얼굴보다 예쁘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세련된 이름을 짓겠다며 한자 사전을 열심히 들여다봤던 아빠 덕분이다.      


  이제껏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며 살았으나. 대부분 버틸만했고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순탄하지 않은 인생’이란 말보다 ‘3등 인생’이란 말이 더 거슬렸다. 순탄하지 않은 걸 순탄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애매하지만, 맨날 3등만 하던 사람도 노력하면 2등 되고 1등도 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니까. 힘이 쭉 빠져버렸다. 게다가 그날 이름이 사주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들은 건 나뿐이었다. 같이 간 친구들은 모두 이름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다.     



     

  “혜영, 수진, 지영, 민아, 미란, 아영, 여빈, 지현, 지예 그리고 또….”     


  다시 찾아간 작명소에서 나는 여러 이름을 읊었다.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 이름과 겹치면 안 된다며 그들 이름을 쭉 불러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이름을 모두 말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휴대전화 연락처를 확인하고, SNS까지 살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면 또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떠올랐다. 나는 계속 작명소에 연락해 이 이름도 빼 달라, 저 이름도 빼 달라 얘기했다. 그러자 작명가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러다가는 이름이 똥개가 될 수도 있어요.”     


  그제야 나는 멈출 수 있었다. 이쯤이면 주변 여자들과 같은 이름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얼마 후, 작명소에서 보낸 등기를 받았다. 그 안에는 내 사주와 어울리는 이름 두 개가 적혀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름을 확인하다가 경악할 뻔했다. 한 이름은 친오빠가 개명하기 전에 쓰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도 내가 오래전에 알고 지낸 남자 지인 이름과 같았다. 나는 왜 여자들 이름만 읊어댄 걸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똥개’ 아니라 다행이긴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늘 3등인 게 무슨 문젠가 싶다. 늘 최고 등수가 3등이었지만,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오히려 갑자기 모든 게 1등으로 바뀌는 인생이 더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10만 원에 받아둔 중성적인 이름을 쟁여두고만 있겠단 말은 또 아니다. 어쩐지 내년도 오락가락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또명당, 당첨요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