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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un 23. 2019

나의 심리상담을 리뷰합니다 #2

아빠를 닮아가고 있던 딸


  - 심리상담 기간 중 자해 또는 자살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리상담 첫날. 상담기간 중 지켜야 할 사항이 담긴 서약서를 받았다. 서명하기 전에 내용을 살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는 자해와 자살도 포함됐다. 아직  정도는 아닌데 너무 일찍 왔나. 그냥 건강염려증 같은 건가. 게다가 한 달 전에 신청한 상담이라. 그때 작성한 내용과상황 달라져 있었다.


  그사이 남편에게 이혼 얘기를 꺼낸 것을 사과했고. 낮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일을 주는 회사에 대한 분노도 가라앉았다. 또한 집과 일을 분리하려 노력했다. 시도 때도 없이 주는 업무는 거실이 아닌 서재에서 처리했고. 가끔 카페도 이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게 완벽해진 건 아니었다.


  “저는요. 불안감이 커요. 알아요. 불안이란 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란 걸요. 다들 가지고 있는 감정이란 것도요. 그저 큰 불안감을 작게 줄이고 싶은 거예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알고 싶고요.”


  “시작이 좋네요. 원하는 게 구체적이라.”    




  신청할 때 작성했던 내용과 원하는 것을 설명하자, 상담사가 종이 두 장과 펜을 내밀었다. 일단 나열된 문장을 완성해 보라고 했다. 예를 들면 ‘나 우울할 때’라고 글이 있다면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내용을 써서 문장을 완성하는 거였다. ‘나는 우울할 때 잠을 잔다’ 이렇게 말이다.     


  막힘없이 문장을 채워갔다. 그러다 마주한 글에 잠시 멈칫했다.    


  - 나는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쓸까 말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걸 쓰세요.”라고 했던 상담사 말이 떠올랐다. 그냥 쓰기로 했다.    


  -나는 아버지가 안쓰럽고 외로워 보인다.     



    

  “아버지가 안쓰럽고 외로워 보인다고 쓰셨는데요. 아버지와 관계가 어때요?”    


  회사 스트레스, 불안감, 달라진 내 모습이 혼란스러워서 갔는데 가족 얘기라니. 얼떨떨했다.    


  “친해요. 제가 엄마보다 아빠를 많이 닮았거든요. 생김새도 그렇고, 무뚝뚝하고 숫기 없는 성격도 그렇고요. 남편이 그러는데 특히 피곤할 때 이중 턱이 되는 게 판박이라고 하더라고요.”


  “보통 무뚝뚝한 아버지와 딸은 친하지 않던데, 두 분은 주로 어떤 얘기를 해요?”


  “영화 얘기, 맛집 얘기, 그리고 최근에는 미드 얘기도 해요. 취향도 비슷하거든요.”


  “아버님이랑은 어렸을 때부터 친했어요?”


  “아, 아뇨. 그건 아니고. 스무 살 때부터요.”


  “스무 살이요? 그때 무슨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상담사 시선을 피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근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모든 게 불편해졌다. 하지만 대답해 보기로 했다.    


  “네. 그때 일 년 정도 아빠랑 둘이 살았거든요.”    



  스무 살 때 아빠 사업이 힘들어졌다. 부부가 이혼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어려움’이란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부모님은 날마다 싸웠고. 오빠는 군대에 가 있는 탓에, 다툼을 말릴 사람은 나뿐이었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때로는 물건이 부서졌다. 어려워지기 전까지 부모님은 사이가 좋았다.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될 줄 몰랐다.


  그 과정에서 숨겨진 비밀도 드러났다. 아빠에게 부모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불러온 분들은 아빠의 큰 어머니와 큰 아버지였다. 아빠의 진짜 아버지는 어린 시절 돌아가셨고, 진짜 어머니는 재혼하면서 아들을 버렸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생각한 아빠의 얼굴에 그늘이 많았던 이유. 자신은 무뚝뚝하면서 아이들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잘해드려, 그런 분들 세상에 또 없다.”라고 했던 이유. 외할머니가 찾아와 “난 내 딸 인생이 더 중요해”라고 했을 때, 아빠가 대들었던 이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부부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리라 판단될 때쯤, 엄마는 외할머니댁으로 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더 많이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더 안쓰러웠다. 일과 가정 무너져 내릴 때 아빠 옆에는 나밖에 없었다. 스무 살이면 어른이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언제까지고 어린아이 일 뿐이다. 아프면 위로가 되기보다 미안해지는 존재였다.     


  집을 팔고 작은 월세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짐 정리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이사한 동네에도 밥집이 많았지만,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로 향했다. 나는 라면, 아빠는 우동을 주문했다. 말없이 각자 한 그릇씩 비워내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돌아오는 동안 아빠가 한 말은 이것뿐이었다.     


  “앞으로 내가 아침밥이랑 저녁밥은 챙겨줄게. 걱정하지 마.”    


  그 날밤 거실에서 얕은 발소리가 들렸다. 동이 틀 때까지 아빠는 베란다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웠고. 딸은 뒤척였다. 아침이 됐을 때 고추장찌개를 두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빠가 끓인 찌개는 고추장과 설탕이 잔뜩 들어가 달고 텁텁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었다.


  아빠는 약속대로 매일 밥을 차려줬고. 나는 맛있게 먹었다. 점점 취향이 비슷해졌다. 함께 등산을 가고, 야식을 먹고, 영화를 봤다. 대화를 많이 하진 않았다. 우린 서로에게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옆을 지켰을 뿐이다.  



    

  “아버님과 특별한 기억이 있네요.”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 먹먹했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아팠지만 아프다고 할 수 없는 기억이었다.    


  일 년 뒤 엄마는 돌아왔고. 다시 형편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함께 살았다. 아빠와 둘이 산 건. 일 년이 전부다. 그 시간 동안 아빠는 애썼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 자신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감췄다. 문제는 딸이 아빠가 열심히 숨기려고 했던 감정을 고스란히 눈치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던 아빠의 불안함과 외로움이 내 삶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대부분의 딸들이 엄마 인생을 답습하는 동안, 나는 아빠 인생을 닮아가고 있었다. 애쓰고 또 애쓰면서 힘들지만 포기하지 못했다. 불쑥 등장하는 거친 감정은 나보다 강한 아빠를 따라 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었다.    


  첫 심리상담이 끝났다. 감춰둔 비밀 창고가 털린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아빠가 아닌 남편에게 전화했다.     


  “어땠어?”

  “뭔가 털린 기분인데 시원하고 괜찮네.”




덧) 그때 아빠가 수미쌤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고추장찌개는 마음이 아닌 식욕으로 먹어 치웠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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