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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un 30. 2019

나의 심리상담을 리뷰합니다 #3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의 민낯

출처: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사랑했나봐> 중, 전설의 주스 짤



“모임에서 만난 언니가 저한테 차갑다고 하더라고요. 전 제가 수다스럽고 잘 웃는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엄마는 맨날 저한테 쌀쌀맞다고 해요. 아무리 바빠도 엄마 부탁을 다 들어주거든요. 단지 살갑게 대답하지 못할 뿐인데 말이죠.”


  “회사요? 3년 넘게 같이 일한 담당자가 있는데요. 제 딴에는 예의 있게 행동한 것 같은데,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저를 차가운 사람인 것 같다고 했더라고요.”     


  두 번째 심리상담 중에 나는 ‘차갑다’‘쌀쌀맞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모두 주변 사람이 내게 한 표현이었고. 한 친구는 내게 ‘넌 호불호가 있는 인간이야’라고도 했었다. 그러면서 말할 때는 솔직하고 재밌는데 입 다물고 있을 때 짓는 표정 때문에, 오해받기 딱 좋은 캐릭터라고 알려줬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내 이야기를 듣고 상담사가 물었다.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음, 잘 놀다가도 갑자기 초조하고 불안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집에 가스 밸브는 잠겨있었나. 내일까지 기획안을 작성할 수 있을까. 늦어지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괜찮을까. 갑자기 온갖 걱정이 떠올라서 집중이 어려워지는 거요.”


  “왜 그럴까요.”


  “글쎄요. 강박증? 압박감? 그런 비슷한 감정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이자 같아요. 제가 더 열심히 하지 못해서, 더 많은 걸 해내지 못해서 생긴 이자요. 갚지 못한 이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난 느낌이랄까요.” 


  “그 이자를 누구한테 갚고 있는데요?”


  “네?”


  “하루 씨가 강박증과 압박감을 느끼며 갚고 있는 이자는 누굴 위한 거죠? 차갑다고 말하는 주변 분들은 아닌 것 같은데요.”


  “...”


  “다 하루 씨 자신을 위한 건데, 왜 자신이 아프고 힘든 것에무딘 걸까요?    


  대답할 수 없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나 역시 일터에서 수많은 마감을 해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단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정도 해내곤 했다. 늘 칼같이 마감을 지켰고. 매번 어떻게든 하면 된다며 밀어붙였다. 나를 쥐어짜며 마감과 약속을 지켜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왜 내 삶에 밀린 이자가 어마어마하다고 느낄까. 어째서 해야 할 일을 다 했음에도 열심히 살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릴까.


  상담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어렴풋이 깨닫게 된 건. 견디고 견디다 보니 내가 통증을 제때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얼마나 무딘지. 피를 보지 않고는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지경이었다.     



     

  문득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치과에 다녀온 날이었다. 잇몸치료를 받아 오른쪽 입안과 턱이 마비된 상태였다. 의사는 되도록 마취가 풀린 후에 식사하라고 했다. 점심시간은 1시간. 치료를 마치고 30분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꼬르륵. 극도의 허기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감각 마비된 한쪽 얼굴을 짚고 고민에 빠졌다. 씹는 시늉을 해봤다. 느껴지지 않지만 잘 씹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왼쪽 미각은 살아있으니. 음식 맛도 느낄 수 있다. 사실 의사는 ‘절대’가 아닌 ‘되도록’이란 말로 당부했으니. 먹지 말란 뜻도 아니었다.     


  식당 메뉴는 쪽갈비였다. 입안에 흥건히 차오르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다시 한번 강력한 마찰로 윗니와 아랫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딱딱. 딱딱. 경쾌하고 야무진 소리다. 고기를 발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제를 하자마자 메뉴가 바뀌었다. 인기 많은 쪽갈비가 동난 것. 교체된 음식은 베이컨이었다. 주인장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며 녹두전도 내놓았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벽에 거울이 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미역국을 먹는데 귀퉁이가 깨진 항아리처럼 오른쪽 입에서 자꾸만 질질 국물이 샜다. 턱 아래로 질질 떨어지는 뜨거운 국물도 느끼지 못했다. 좀 지저분했다. 하지만 말짱한 왼쪽 미각으로 느껴지는 국물 맛이 좋다. 다음은 베이컨이었다. 질겅질겅. 평소보다 힘을 내 씹었다. 오른쪽 치아 사이에 있는 베이컨은 잘리지 않았다. 꾹. 더 힘을 줬다. 그러다 소름이 돋았다. 왼쪽 미각에 감지된 피 맛. 나는 불길한 마음에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아랫입술을 뒤집어 봤다. 오른쪽 입안이 찢어져 줄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통증이 없으니. 제 살이 베이컨인 줄 알고 씹은 거다. 열심히.


  더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마취가 깨고 느껴질 통증이 두려웠다. 문득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무서운 일이구나 싶었다. 피를 봐야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제 살 씹어 찢어지고 피가 터졌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 것처럼. 견디고 또 견디며 작은 통증과 고통을 무시해온 결과가 어떤 것인지. 내가 아닌 남들 눈에는 훤히 보였다. 쌀쌀맞고 차가운 얼굴로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의 민낯을, 나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살았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른 채 말이다.   

 

  “오빠 자기애랑 자존감은 비례하지 않나 봐. 나 그걸 오늘 알았다.”


  “내가 말했잖아. 넌 자기애에 비해 자존감이 낮다고. 그래서 늘 걱정이야.”    


  두 번째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또 남편에게 전화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나의 민낯과 날 것 그대로를 가장 많이 봐온 사람이다. 언젠가 내가 힘들어 죽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한동안 아침마다 나를 깨우고 출근했었다. 나중에 이유를 물었더니. “네가 살아있나 궁금해서 "라며 얼버무렸다. 그때 나는 그 말이 농담이라 생각하고 까르르 웃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는 아내의 고통을 대신 느끼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미안해졌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하늘이시여> 그래도 죽을 땐 고통 없이 눈 감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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