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싸웠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버스 안에서였다. 퇴근길에 싸움을 목격하며 작성한 이 글은, 사건의 전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소주 아저씨’ 또 한 사람은 ‘인삼주 아저씨’로 작성했다.
그 싸움은 예견된 것이었다.
버스에 오르자. 인삼주 향이 코 끝을 때린다.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인삼주 아저씨' 냄새다. 그는반쯤 구부러진 혀로 묻는다.
“신이 버스에서 내리는 걸 뭐라는 줄 알아요?”
옆자리 젊은 여자는 이어폰을 꽂고 건너편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그사이를 지나치던 내게 답을 흘렸다.
“신. 내. 림”
나는 마지막 빈 좌석을 차지했다. 버스 가장 뒷자리에 있는 가운데 좌석. 버스 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에 앉아 생각해보니 말이 되긴 했다. 신내림 말이다. 인삼 아저씨는 5분 후에 누굴 만나게 될지 모른 채. 언뜻 시답잖은 것 같지만 들어보면 그럴싸한 문제를 계속 냈다.
‘소주 아저씨’가 등장한 오른 건.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 정거장에서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불꽃이 튀었다. 흐느적거리며 복도를 지나던 소주 아저씨와 자리에 앉아 몸을 복도 쪽으로 반쯤 꺼내 둔 인삼주 아저씨가 충돌했다. 오. 사. 삼. 이. 일. 파이트(Fight).
소주 아저씨: 야이 야이 자식아. 술을 쳐 마셨으면 곱게 찌그러져 있어야지!
인삼주 아저씨: 자식? 야 인마!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자식이라고 씨부려?
소주 아저씨: 씨부려? 이 자식이 진짜! 너야말로 내가 누군 줄 알고 까불어? 어?
인삼주 아저씨: 기껏 소주나 먹는 놈을 내가 알아서 뭐하냐?
소주 아저씨: 소주를 무시해? 대한민국이 나태해지는 게 다 너 같은 놈들 탓이야! 알아?
흥미진진했다. 소리만 들으면 이미 멱살을 붙들었을 것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또한 계속해서 “너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쳤지만 끝내 자신들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싸움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건.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들어설 때부터였다.
소주 아저씨: 이게 진짜 확! 어디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 죽고 싶어?
인삼주 아저씨: 죽고 싶냐는 놈치고 산 놈 못 봤다!
소주 아저씨: 이 새끼가 진짜! 오늘 눈물로 샤워를 시켜버릴까 보다!
띵동.
소주 아저씨는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더니. 이내 벨을 눌렀다. 잠깐이었지만 인삼주 아저씨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 모습에 소주 아저씨가 낄낄거리자. 페이크(Fake)에 속은 게 화가 난 인삼주 아저씨가 반격했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로 어깨로만 위협적인 속도로 허공을 찔렀다. 그리고는
인삼주 아저씨: 저걸 그냥 확! 머리부터 발끝까지 질근질근 밟아 줄까 보다!
소주 아저씨: 피곤했는데 잘됐네. 시원하게 못 밟기만 해 봐라! 아주 질질 짜면서 눈물 샤워하게 만들 테니까! 내려! 인마!
그때였다. 소주 아저씨가 내릴 정거장에 선 버스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두 아저씨의 말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듣다 지친 기사님이 “둘 다 내려서 싸우세요!”라며 화를 냈다. 싸움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소주 아저씨는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하며 내렸고. 인삼주 아저씨는 “무서워서 도망가는 꼬락서니 하고는” 응수했다.
삑. 문이 닫히자. 버스 안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눈앞에서 싸움을 본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끝내 밝혀지지 않은 두 아저씨의 정체는 뭘까. 버스를 탄 정거장과 옷차림으로 짐작할 때, 한 사람은 자영업자 나머지 한 사람은 부장님쯤 되는 회사원이 아닐까 싶었다.
그냥 보면 웃긴 싸움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현명한 싸움이었다. 싸웠지만, 이긴 사람도 없고, 진 사람도 없고, 다친 사람도 없고, 버스도 승객도 소음 외에는 피해가 없었다(흥미진진하게 보는 사람들이많았다는) 두 아저씨가 묵직한 한 방이 아닌 산만한 잽으로 서로를 공격한 덕분이다.
문득 회사생활도 저런 게 아닐까 싶다. 묵직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보다 산만하게 입으로만 조잘거리는 사람이 조직 생활을 질기게 버틴다. 참고 참다가 분노하는 사람보다 크고 작은 일에 자주 삐죽거리는 사람이 상사에게 덜 미움을 받는다. 책임질 마음으로 나선 사람보다 책임은 피하고 들러리처럼 서 있는 사람의 업무량은 적당한 편이다.
희망 없는 조직 생활에서는 묵직한 한 방보다 산만한 잽이 필요한 순간이 더 많다. 회사는 한 사람의 도전과 용기가 아닌, 여러 사람의 타협과 순응으로 돌아간다. 고로 나는 사무실 구석에 앉아 존재감 없이 일을 하고 칼퇴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