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May 22. 2017

언제든 연락해주세요

따분한 4일 차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황금연휴. 부모님과 여행지에 도착해 호텔로 들어설 때였다.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으나. 광고 전화는 아닌 것 같았다. 누굴까?     


 “네.

  “안녕하세요. 저는 **경찰서 황**수사관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그렇지, 보이스피싱. 어쩜 이 사기 전화는 기적으로 체하지 못할 먹을 부르는 걸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드러내려던 찰나. 1달 전에 경찰서를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수사관님이구나.



    

  연애 때부터 남편은 20년쯤 된 소나타 3을 몰고 다녔다. 연식이 꽤 오래된 낡은 자동차였지만, 우리의 데이트와 결혼 준비를 도와준 고마운 애마였다. 물론, 여름에 오르막길을 오를 땐 꼭 에어컨을 꺼야 했지만. 가끔 시동이 켜는데 10분 이상 소요됐지만,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어머니께서 18년쯤 타고 남편에게 준 나름 스토리가 있는 자동차였기에, ‘어머 아직도 저런 차를 끌고 다녀?’ 하는 주변 사람들의 짓궂은 농담과 지적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감가상각을 고려해서 최소 3년은 더 탈 예정이야 '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과 달리 자동차는 오래 버텨주지 못했다. 결혼 후 6개월쯤 지나자. 자동차는 오르막길에선 더 힘겨워졌고, 시동을 거는 시간도 더 오래 걸렸고, 무엇보다 가끔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나는 날카로운 소음은, 도로 위에 있는 여러 운전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우리의 소중했던 애마를 폐차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2013년식 작은 승용차를 중고로 구매했다. 이때도 지인들은 ‘이왕이면 새 차 구매하지. 너희도 참 궁상이다’라고 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나름 큰 맘먹고 지갑을 활짝 열어 구매한 비싼 물건이었다.  


  “어때?”

  “오빠! 이 차는 조용해서, 참 좋다!”    


  우린 이 중고차에 크게 만족했고, 전처럼 우리의 애마를 항상 애지중지했다. 그래서 운전이 서툰 나는 차를 몰고 나갈 때면, 주차 후에 여러 번 자동차를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빼려고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지중지 애마의  앞 범퍼에 30cm 정도의 상처가 나 있었다. 설마 아니지? 이건 그냥 뭐가 묻은 거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남편은 외투 소매로, 나는 엄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열심히 닦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자체 수사에 들어갔다. 분명 마지막으로 운전했던 날에는 없던 상처다. 그렇다면 지난 1주일 동안 세워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주차공간이 협소하고, 우리 자동차가 모퉁이 쪽에 세워져 있었기에, 수많은 자동차가 지나갔을 거다. 그리고 상처는 하얀색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이용한 하얀색 차량일 확률이 높았다(너무 간단하고 쉬운 추리극).

    

  그 후 아파트 관리실을 찾아가 CCTV 확인 요청을 부탁했다. 그리고 3일 뒤 관리소장님으로부터 의심되는 2대의 차량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 자동차들은 아파트 주민 차량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실에서 중재해줄 수 없다며 ‘새 차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정도는 타고 다니는 데 무리가 없지 않아요? 꼭 잡아야겠으면, 경찰서에 가보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경찰서에 갔다. 이런 접촉사고가 흔한 건지, 그날따라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잦았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경위서(?)를 작성한 후에도 한참을 기다렸다.    


  “이하루씨!” 

   

  서류를 내고 한참이 지난 후에, 어떤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자신을 황 수사관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 주변은 꽤나 사납고 산만했다. 이야기하다 보면 뒤에 사람들이 싸우고, 또 이야기하다 보면 민원전화가 들어오고, 이렇게 맥이 툭툭 끊어지는 대화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수사관님은 그 짧은 순간마다 열심히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큰 사고도 아니고, 비싼 자동차도 아니지만, 저희가 아끼는 자동차라서 제가 화가....” 


  복잡한 사무실의 바쁜 사람을 붙들고 앉아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수사관님은 내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당연히 화나죠! 남의 차를 긁어놓고 도망간 사람이 나쁜 거죠. 저희가 잘 조사해 볼게요.”         


 솔직히 그때 나는 이미 범인을 잡고 사과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자동차 스크래치 사건은 자연스럽게 잊혔다. 가끔 범퍼를 볼 때 빼고는.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수사관님에게 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바빠서 좀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말씀하신 CCTV를 다 확인해 봤는데요. 정말 의심되는 차량이 2대가 있더라고요. 그 차량들도 다 확인을 해 봤는데요. 이런 경우 그 차의 앞 범퍼에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없더라고요. 본인들도 아니라고 하고요. 조금만 빨리 신고하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제가 지금 가족들이랑 여행을 와 있어서요. 계속 통화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조사해 주신 부분 고맙습니다. 제가 연휴 끝나고 이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가족과 여행 중이라 제대로 통화를 하지 못했다. 평일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으나, 나는 바빠서 전화한다고 했던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지난주 수사관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바쁘신 것 같아. 제가 연락드렸습니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최근에 좀 바빴습니다.”

  “제가 그사이에 CCTV를 다시 확인해 봤는데요. 그 두 차량 외에는 의심되는 차량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꼭 찾아드리고 싶었는데...”

  “고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너무 죄송하네요.”    




  그 수사관님에게 그 일은 당연한 업무 중 하나였을 거다. 그리고 그 날은 평범한 날 중 하루였을 거다. 그렇지만 어쩐지 내게는 평범하지 않은 따뜻한 날과 일로 기억된다. 전혀 관계없는 타인에게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직업은 쥐꼬리만큼의 월급을 주면서 나의 모든 시간을 지배하는 일’이란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요즘이었다. 처음 이 직업을 선택했던 풋풋한 마음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이를 보는 일을 해야 하고, 나라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정치하고, 글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일을 하는게... 당연하고 이상적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나조차 그렇게 일하고 있지 못했다.     


  수사관님은 마지막까지 내게 미안해하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혹시 경찰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저희가 공용으로 쓰는 휴대폰인데요. 전화를 받지 않으면, 메시지라도 남겨주세요. 이번에는 도움을 드리지 못했지만, 그때는 꼭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글을 쓰며 다시 떠올려보니, 다시 말하고 싶어 진다.    

 

 “고맙습니다. 수사관님.”  








매거진의 이전글 유부녀들의 뒷담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