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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Oct 17. 2017

결혼, 추천하진 않겠습니다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14


  긴 연휴의 마지막 날. 작고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툰 후 혼자 카페에 갔다. 햇빛이 있는 곳은 좀 뜨겁고 그늘은 좀 서늘했던 날씨였다. LA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그제야 홧김에 나온 탓에 내 손에 지갑과 휴대폰이 전부란 사실을 깨달았다. 책이라도 한 권 가지고 나올걸, 하는 아쉬움에 얕은 한숨이 터졌다. 그러나 집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봤다. 할 일이 없으니, 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이 내 눈에 밟혔다. 자전거를 탄 아이와 부모, 팔짱을 끼고 산책 중인 신혼부부, 손을 꼭 잡고 있는 할머니와 손자까지. 아파트촌의 주말과 연휴 풍경은 한가롭고 가족적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카페 창의 풍경이 다르지 않았을까? 쇼핑백을 잔뜩 들고 있는 여자들, 한잔 하려고 모인 남자들,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남자와 여자…. 평일처럼 바쁠 게 없지만, 괜히 더 서두르게 되고, 괜히 흥분된 그런 분위기의 거리 말이다. 아마 그런 풍경이 펼쳐진 카페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으리라.   


  어떤 풍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결혼 후 가족 단위가 편안하게 오가는 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너는 왜 결혼했어?    


  얼마 전,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쩌다 이런 질문까지 하게 됐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큰 의미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단한 말투로 답했다.

      

  “나는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어. 안정적인 삶을 원했거든. 그러는 너는?”    


  똑같은 질문인데, 나는 서슴없이 뱉어낼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친구처럼 ‘가족’이란 단어로 답을 만들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도 아버지, 어머니, 오빠, 조카 등. 내겐 충분한 가족이 있었고, 단 한 번도 가족 인원이 부족 하단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타인에게 ‘내 인생의 동반자’라던가 ‘완벽한 사랑’을 기대할 만큼 로맨틱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먼저 시집간 친구들을 보면서 조바심이 났던 것도 아니다.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서른이 넘어서는 혼자 사는 것도 꽤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다. 오히려 결혼에 목메고 있었다면, 결혼을 못 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 그래서 결혼을 내 인생에 불쑥 들여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났고, 나와 그는 결혼하기 적절한 나이였다. 그래서 결혼하게 됐다. 우습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타이밍’이란 것에 묶여 결혼한 사람들이 많다.  




  결혼하니까. 좋아?   


  미혼인 지인이 내게 결혼에 관해 물어오면 난 늘 같은 말을 한다.     


  “반반이야. 좋은 것 반! 싫은 것 반! 근데, 결혼이 꼭 만들어야 할 중대사는 아닌 것 같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한국 여배우와 결혼한 중국 남자 배우가 ‘결혼 조하’라고 귀엽게 말하던데…. 나의 신혼 초반은 ‘결혼 시러’에 가까웠다. 서로의 고정관념이 달라 벌어지는 설전, 업무처럼 느껴지는 며느리와 사위의 역할, 쉬는 날도 쉴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집안 행사와 사람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내 삶에 한 번에 들여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긴, 개인에게 집중된 가치관과 삶에만 익숙한 내게, 그런 변화가 덜컥 소화되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   


  결혼에 대한 목표, 가치관, 꿈이 있고. 힘들게 헤매더라도 새로운 행복을 탐구하겠다는 사람에게 결혼은 큰 의미와 굉장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혼자도 행복한데,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부추기니까, 하게 되는 결혼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글에 쓴 적이 있는데, 결혼은 삶의 무게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삶은 무게가 두 배가 된다. 그 무게감이 곧장 묵직한 행복으로 다가올지. 감당하고 싶지 않은 짐이 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결혼은 분명 희생을 통해 얻는 행복이 있다. 그러나 혼자가 편한 사람들에 그런 행복을 맛보라고 강요하는 건, 지나친 오지랖인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행복을 찾기 어려운 세상인데, 충분히 혼자도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건. 지름길을 두고 가시밭길로 가서 행복을 찾으라는 셈이다.     


  나는 지금 혼자일 때는 몰랐던 좋은 것 반, 싫은 것 반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좋은 것 반’을 강요하긴 싫다. 나이, 상황, 타인에 이끌려 하기에는, 결혼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며 무게도 꽤 나간다. 헤비급 정도랄까?


  둘보다 혼자일 때 행복하면… 결혼 꼭 안 해도 된다.



결혼, 꼭 추천하진 않겠습니다.

결혼은 모두에게 주워진 숙제가 아닌

             개인에게 주워진 선택일 뿐이니까요.



             



  이 글을 쓴 계기가 ‘명절후유증’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연휴 마지막 날, 남편과 싸운 이유는 만두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맛있는 만두를 내가 먹어서 남편이 삐졌고, 나는 그런 일로 삐진 남편에게 화가 나서 싸웠다. 부부싸움의 원인에는 ‘어이 있는 것’보다 ‘어이없는 것’이 더 많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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