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가?

나와 상대방이 쥐고 있는 카드패를 파악하기

by 탐구인간

다양한 구체적 상황에서 적절한 예측을 수행하여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고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들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나와 타인의 순간적인 심리와 행동을 예측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타인이 어떻게 세상을 예측할 것인지, 즉 예측 그 자체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예측 그 자체를 예측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나의 잘못된 예측을 수정하거나, 타인의 예측을 뛰어넘어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데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카드게임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나와 상대방이 쥐고 있는 카드패가 무엇이며, 각자가 주로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 등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훨씬 수월하게 게임을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무작정 단순화하고 도식화하려는 시도는 정확한 이해를 방해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핵심 구조를 파악하도록 하여 이해를 돕고 사고를 확장하기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하기 위해, 아래 표와 같이 인간의 정신 작용을 요약해 보았다.


본능, 성격, 신념이 사전 설정값으로 존재하며, 이를 바탕으로 상황이라는 입력값에 따라, 다양한 지각, 감정, 생각, 행동이 반응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신념은 다른 요소들에 영향을 받아 계속해서 업데이트(수정)될 수 있으며, 특히 주어진 상황에 대한 지각과 생각이 신념을 업데이트하는 주된 재료 역할을 한다.


나와 타인의 본능, 성격, 신념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면 상황에 따라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예측해 볼 수 있다. 본능, 성격, 신념,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질 것이다. 특히 나와 타인의 신념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나와 타인의 예측 그 자체를 더욱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


* '신념'은 반복적인 경험이 만들어낸 '패턴화된 생각의 체계'를 의미하며, 이와 구분되는 표현으로서 여기에서 말하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발생하는 생각'을 의미한다.

* 이 글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신 작용과 관련된 각 구성 요소를 구분한 것으로, 엄밀한 기준에서 실제 학술 용어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본능

이 게임에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궁극적인 목표

본능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법칙으로 정해져 있어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유전자의 보존, 즉 생존과 번식이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엄밀하게 말한다면 번식이 궁극적인 목표이고 생존은 그 발판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실제 즉각적인 의사결정에서 우선순위를 따질 때는 번식보다 생존이 우선한다. 일단 살아남아야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번식 전략을 가지고 있다.


남성은 매일 대량의 정자를 배출할 수 있고 임신과 출산, 수유를 겪지 않기 때문에 여러 기회에 빠르게 접근하여 시도하는 것이 가능하다(신속). 그렇기 때문에 같은 상대를 두고 다른 남성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발달하기 쉬우며(경쟁), 한 번의 시도가 성공할 확률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도의 범위를 넓히고(확장), 실패하더라도 다른 상대를 찾는 식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역동). 이러한 특성을 요약하여 '넓이 전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장점은 기회가 많고 자식을 갖기까지의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유리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시도를 많이 하는 만큼 실패 가능성도 높아지고 특히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양육하는 것과 같이 장기적인 성과를 내는 것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은 한 달에 한 개의 난자만 배란할 수 있고 긴 임신 기간과 출산, 수유를 겪게 되기 때문에 자식을 갖기 위해서는 큰 투자를 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더 꼼꼼히 고르고 확인하는 방향으로 발달하기 쉬우며(선별), 출산 이후에도 그 한 명의 자식에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집중) 오래도록 투자(지속)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또한, 이를 위해 안정적인 양육 환경을 유지(안정)해야 하므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모으는 것에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을 요약하여 '깊이 전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장점은 신중하고 집중적인 투자로 인해 자식 한 명 한 명이 잘 생존하고 발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오래도록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과 같이 장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시간과 에너지가 오래 묶여 초기 비용이 크고 실패했을 때의 손실도 크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번식 전략의 차이로부터 다양한 신체적·심리적 특성이 파생되어 나타난다.


남성은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근력, 스피드와 같이 단시간에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최대성능이 우세하다. 같은 남성과의 경쟁에서 이점을 갖기 위해 상대적으로 체격이 발달하게 된다. 많이 시도하여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므로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발달하기 쉬우며, 선택을 받으려면 상대를 제쳐야 하므로 경쟁 지향적인 성향 또한 발달하기 쉽다. 번식에 있어서 초기 비용이 낮으므로 이로 인해 빠르게 단기 기회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여성은 장기간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피로저항과 같이 장시간 꾸준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지속성능이 우세하다. 본인과 태아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평균적인 회복력·면역력이 우세한 경향이 있다. 번식에 있어서 한 번 실패했을 때의 손실이 크므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예방하고 관리하려는 성향이 발달하기 쉽다. 장기적인 양육은 혼자서 하기 어려우므로 가족, 주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협력 지향적인 성향 또한 발달하기 쉽다. 긴 임신과 양육 기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장기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단, 위에서 다룬 남성과 여성의 번식 전략과 파생 특성은 어디까지나 집단 평균의 경향일 뿐, 성별과 관계없이 환경, 경험, 성향 등에 따라 개인마다 크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각 성별을 일반화하거나 가치 판단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주제를 다룬 이유는 성별에 따른 신체적 차이와 경향성의 차이가 존재하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존재하는 사실을 무조건 외면해 버린다면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사실과 경향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사실을 그대로 따라야만 한다거나 그것이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고, 모두가 그렇다는 편견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며, 사실과 가치 판단은 별개의 차원이라는 것을 밝힌다. 존재하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각자의 가치와 선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사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자신의 심리적 문제, 타인과의 관계 문제, 사회 문제 등에 대해서 효과적인 논의와 개선,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 이해의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성격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


성격은 각자가 특정 상황에서 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관련된다. 성격이 형성되는 데 선천적인 영향이 크고, 주요한 후천적 영향도 삶의 초기 환경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성격 역시 선택했다기보다는 선택당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살아가면서 장점을 개발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시켜 나갈 수는 있지만 타고난 성격을 의지만으로 완전하게 다른 사람처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이해하며, 어떻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격 5요인 모형(Five-Factor Model, Big5)'은 전 세계 성격심리학자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검증된 이론으로, 인간의 성격을 심리적 민감성(Negative Sensitivity), 외향성(Extraversion), 인지적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대인수용성(Agreeableness), 규범지향성(Conscientiousness)이라는 5가지 상호 독립적인 요인들의 조합으로 설명하는 모델이다.


⦁ 심리적 민감성

일상생활·업무에서 경험하는 부정적 정서와 그에 대한 적응의 정도를 의미한다. 높은 심리적 민감성은 적은 양의 스트레스에도 쉽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 적극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외향성

일상생활·업무수행 시 대인관계에서의 상호작용 및 사회적 적응 패턴을 의미한다. 높은 외향성은 더 많은 양의 감각 자극을 받아들여야 그것이 충분하다고 느껴 적극적으로 보상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인지적 개방성

새로운 생각, 상황, 사람들에 대한 대응 패턴을 의미한다. 높은 인지적 개방성은 뇌에서 정보를 처리할 때 여러 의미영역과 의미처리 과정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활발하게 상호작용하여 광범위한 연상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대인수용성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태도와 욕구를 의미한다. 대인수용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 뇌 영역은 더 크고, 타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평가’하는 것과 관련된 뇌 영역은 더 작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규범지향성

목표 지향적인 자기관리 및 통제 경향을 의미한다. 높은 규범지향성은 충동 통제,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개인의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각 성격 특성이 상황에 따라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기만 한 성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남아 다양한 성격이 유전되어 오게 되었다. 즉, 모든 성격은 장단점이 존재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신념

각자 과거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일종의 전략 노트


신념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사고의 틀이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사전모형'이며, 이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지각, 감정, 생각, 행동이 만들어진다.


신념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지각과 생각을 통해 계속해서 업데이트될 수 있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 지각된 내용이 기존의 신념과 다르다면(예측오차 산출), 그 차이만큼 임시적으로 생각을 조정하여 가설적 예측을 만든다(임시가설). 그렇게 기존의 신념을 살짝 비틀어 보정한 임시가설이 실제 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거나, 임시가설이 맞다는 강력한 근거를 발견한다면 최종적으로 기존의 신념을 업데이트하게 된다.


이전 글에서 예측 처리 이론을 기반으로 우울과 불안을 간단하게 설명했었는데, 신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다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기존에 형성했던 신념과 새롭게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 중 어떤 것을 더 신뢰할 것인지를 조정한다.


우울은 자신의 부정적 신념을 과하게 확신하여 새롭게 들어오는 긍정적 감각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를 낮게 반영하는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인 데이터가 새롭게 들어와도 부정적 신념을 수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긍정적 데이터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부정적 신념을 강화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불안_예측 모델.png

불안은 새롭게 들어오는 부정적 감각 데이터를 과하게 신뢰하고 모호한 데이터까지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신념을 지나치게 자주 수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안정적인 확신을 갖기 어려우며, 다양한 부정적인 가능성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게 된다.


우울과 불안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석은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일 뿐 의학적 진단은 아니며, 실제 우울과 불안은 상황에 따라 훨씬 혼재적이고 이질적인 양상을 띨 수 있다. 그럼에도 예측 처리 이론을 기반으로 한 해석은 우울과 불안을 큰 틀에서 명쾌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신념과 감각 데이터 간의 신뢰도를 스스로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법을 연습한다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지각

각자 낼 수 있는 카드패의 기본적인 구성이 대체적으로 정해지는 것


지각은 무엇이 어디에 있고 어떠한 상태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으로, 같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지각하는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감정, 생각, 행동과 마찬가지로 지각 또한 객관적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신념과 생각이 만들어낸 예측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주관적 요소이다. 즉, 이미 머릿속에 구성해 놓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객관적 사실에 대해 논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지각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타인과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

다양한 방향성과 에너지를 가진 각각의 카드


감정은 느낌(쾌/불쾌)과 각성도(낮음/높음)의 조합을 통해 형성되는데, 기본적으로 기쁨(joy/happiness), 슬픔(sadness), 분노(anger), 공포(fear), 혐오(disgust), 놀람(surprise)이라는 여섯 가지로 분류된다. 느낌과 각성도라는 두 개의 축을 세밀하게 나누면 더욱 다양한 감정들로 세분화하여 표현될 수 있다.


감정은 우리의 주의가 어디로 향할지, 어떤 가설을 먼저 떠올릴지 등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 위험 신호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앞으로 위험할 것이라는 가설에 더 집중하게 된다. 즉, 감정은 지각과 생각의 방향과 가중치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감정은 저마다 존재하는 이유와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아래와 같이 주요한 장단점을 정리할 수 있다.




생각

모델링, 추론, 시뮬레이션, 의사결정, 학습 등 다양한 역할과 내용을 가진 각각의 카드




행동

손에 쥐고 있던 카드패, 즉 가능한 선택지에서 실제로 선택되어 외부로 드러난 카드


행동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다시 하나의 상황(입력값)으로 작용하여 신념을 업데이트하는 데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의 카드게임에서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평균 수명 이상 살아냈다면 승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식을 몇 명 이상 낳았거나 혹은 특정 기준을 충족하도록 자식을 잘 길러냈다면 승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기준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것에 따라야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승패를 판단하거나 승리와 패배 자체를 구분 짓지 않는 것이 자신만의 행복을 누리는 현명한 방법이다.


다만 우리의 정신 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게임의 공략집을 읽는 것과 같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보다 편안하고 윤택한 환경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대니얼 네틀 (2009). 『성격의 탄생』(김상우 옮김). 와이즈북. (원서 출간 2007년)

피어스 J. 하워드, 제인 미첼 하워드 (2018). 『청소년 이해를 위한 심리학』(김동일 옮김). 학지사. (원서 출간 2011년)

필리프 슈테르처 (2023). 『제정신이라는 착각』(유영미 옮김). 김영사. (원서 출간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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