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측을 예측하고 비틀기
보통의 사람이 고통을 느낄 법한 상황에서 차력사는 어떻게 고통을 버텨내면서 놀라운 쇼를 선보일 수 있을까? 고통을 버텨내는 차력의 주요한 원리는 고통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있다.
우리의 뇌는 이미 예측하고 있는 익숙한 자극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자극을 더 중요한 것으로 보고 그것에 대해 더 크게 반응한다.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정보 위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한데,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익숙한 자극은 이미 위험하지 않다고 여러 번 판단을 내린 것이므로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반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자극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아직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일상적인 자극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천재지변, 전쟁, 범죄 사건 등을 알려주는 비일상적인 신호를 놓치게 된다면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미 예측하고 있는 익숙한 자극에 대해서는 뇌가 덜 반응하도록 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차력을 선보일 때 고통이 정확히 언제, 얼마나 오게 될지를 미리 알고 시뮬레이션하면 실제 통증이 익숙한 정보로 인식되어 고통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 예측한 것과 실제 자극이 다를수록 뇌가 그것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여 고통을 크게 느끼게 되지만, 예측한 것과 실제 자극이 같다면 뇌는 그것을 위협적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 고통을 적게 느끼게 된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는 생각을 무의식으로 체화하는 '의미부여 최소화 전략'은, 현실적인 수준으로 예측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차력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력이 실제와 정확히 일치하는 예측을 통해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면,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는 실제와 다르지만 긍정적인 예측을 통해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 뇌는 '지금 나 자신과 세계는 어떤 상태가 될 것이다'를 끊임없이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이 감각 데이터보다 우세하게 받아들여질 경우, 예측이 감각 데이터를 재해석하고 실제 생리 반응이 예측에 맞게 바뀌게 된다. 진통제라고 믿고 가짜 약을 먹으면 통증이 곧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는데, 이것이 비록 실제와 다른 착각일지라도 예측에 따라 뇌에서 엔도르핀과 같은 진통 물질이 분비되어 실제로 통증이 완화된다.
반대로 부정적인 예측이 실제 생리 반응을 악화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실제로는 부작용이 없는 약이라고 하더라도 환자 중 일부는 메스꺼움, 통증, 어지러움 등을 느낄 수 있다.
즉, 예측이 심리적 요소뿐만 몸의 생리 반응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차력은 예측을 실제와 일치시키려고 하고,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와 다른 예측을 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언뜻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두 가지 전략은 모두 '이것은 위험하지 않다'는 뇌의 판단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방식은 달라도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차력, 플라시보와 유사한 원리가 현대 심리치료기법에도 적용되고 있다. 차력, 플라시보의 전략을 포함하여 현대 심리치료기법의 주요한 활용 전략을 아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예측의 정확도 조정: 잘못된 예측 교정(차력)
예측의 방향성 조정: 긍정적 예측 강화(플라시보)
예측의 메타 조절: 예측 오차를 바라보는 태도 훈련
예측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정하는 전략(플라시보)은 특정한 치료기법에 중점적으로 활용된다기보다는 대체로 여러 치료기법에 공통적인 기반으로 활용된다.
실제 각 치료기법은 여러 가지 전략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각 치료기법에서 활용하는 주요한 전략을 기준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 OLP는 엄밀히 말해 '심리치료'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치료라는 점에서 예시에 포함시켰다.
잘못된 신념을 현실 경험을 통해 검증하여, 현실과 맞게 예측할 수 있도록 교정하는 방법이다. 비합리적 사고를 교정하여 감정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항상 실패할 거야'라는 신념을 현실 경험과 비교하여 실제로 항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항상 실패하는 것은 아니며, 실패해도 괜찮고 실패가 내 가치의 전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신념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교정할 수 있다.
외상 기억(트라우마 기억)을 감각적으로 재처리하여 신념을 재설정하는 방법이다. 과거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외상 기억이 뇌의 정보처리 시스템에 고착되면 현재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도 위협적이라고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외상 기억을 떠올리며 좌우 안구운동을 반복해 뇌에 새로운 감각 자극을 주면, 외상 기억이 점차 안전한 맥락에서 재통합되면서 감정적 강도를 낮출 수 있다. 이를 통해 '과거는 과거의 일이며, 지금은 안전하다'는 긍정적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플라시보 효과의 원리를 실제 치료에 적용한 것으로, 기대를 긍정적으로 재설정하여 새로운 신념을 만드는 방법이다.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이건 플라시보(가짜 약)지만, 플라시보도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설명한다. 내담자는 '실제로 나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약을 복용하면서 실제로 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이 더욱 강화되어 실제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신념에 따라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판단 없이 관찰하여 그에 대한 반응성을 낮추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공포감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릴 때 실제로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신념에 따른 예측은 그것을 큰 위험으로 받아들여 불안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자동적으로 파생되어 나올 수 있다. 즉, 예측과 실제 간에 오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MBCT는 이러한 예측 오차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거나 굳이 교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차를 가진 생각 그 자체를 판단 없이 하나의 '현상'으로 관찰하고 '지금 여기'의 감각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며, 내가 곧 생각인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생각을 바라보는 태도를 교정할 수 있게 된다.
신념에 따라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판단 없이 수용하면서도, 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전념하여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MBCT가 예측 오차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에 대한 반응성을 낮추는 것에 집중했다면, ACT는 예측 오차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가치에 따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에 집중한다. 생각은 통제할 수 없더라도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며, 이를 통해 자기 효능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감정의 강도를 조절하여 신념을 안정화하는 방법이다.
예측 오차의 내용을 수정하지는 않지만, 오차에 대한 감정을 조절하여 생각과 신념이 다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생각을 바꿔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강도를 조절하여 주어진 상황을 안정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연락을 받지 않을 때 무시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분노의 감정이 과하게 일어날 수 있다. 분노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더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감정을 조절하여 각성도를 낮춤으로써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이 곧 무시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연결 고리를 느슨하게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상황을 재해석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이 마련된다.
우리의 뇌를 전선이 얽힌 회로에 비유할 수 있다. 전선들이 함께 사용되었을 때 해당 전선들 간에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며, 자주 함께 사용되는 전선들끼리는 연결이 굵어지고, 거의 사용되지 않는 연결은 가늘어진다. 즉, 외부 환경 변화와 경험에 따라 뇌의 신경 회로 배선과 연결 강도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학습하고 연습할수록 더욱 잘 기억하고 잘 다루게 되는 반면, 연습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잘 다루지 못하게 되는 것은 뇌의 신경 회로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신념은 뇌의 신경 회로가 만든 오래된 습관적 해석의 길이다.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면, 그때마다 사용되던 회로가 점점 굵어져서 '세상은 대체로 이렇게 돌아갈 것이다'라는 사전모형을 만든다. 우리는 기존에 만들어낸 사전모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 예측을 하고, 실제 감각 데이터와 예측 간의 차이, 즉 예측 오차가 있는지를 빠르게 계산한다. 만약 예측 오차가 크다면 기존 예측에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관련된 기존 회로의 세기가 작아지며 새로운 회로가 형성되기도 한다. 반면 예측 오차가 작다면 기존 예측이 대체로 맞은 것으로 보고 회로가 수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예측 오차에 따라 회로를 조정하는 과정이 곧 신념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념을 업데이트한다는 것은 'A가 발생하면 그다음에 반드시 B가 발생한다', 'A는 무조건 B이다'와 같이 A와 B 간에 강력하게 존재했던 기존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A가 무조건 B인 것은 아니다' 혹은 'A는 C일 수도 있다'와 같이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뇌의 신경 회로를 바꿔 신념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주요한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1. 기존 신념을 반박할 수 있는 사건을 자주, 다양한 맥락에서 경험하기
같은 방향의 경험을 많이 하되, 다양한 장소, 시간, 인간관계에서 겪을수록 신경 회로가 넓게 일반화된다. 예를 들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기존 신념을 수정하기 위해 다양한 장소, 시간, 인간관계에서 작은 도움을 주는 행동을 반복하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신념이 다양한 상황에서 일반화되면서 강화된다.
2. 기존 신념을 반박할 수 있는 사건을 강렬하게 경험하기
예측 오차의 크기가 클수록, 강한 감정(높은 각성도)을 느낄수록 신경 회로가 크게 조정된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람들은 무조건 나를 싫어한다'라는 기존 신념을 수정하기 위해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짧은 대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그리고 직접 그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물어보고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른 긍정적 반응을 얻는다면, 해당 경험이 기존 신념을 수정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3. 사건에 대한 의미를 재평가하기
동일한 사건도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그 의미에 관련된 신경 회로가 강화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발표를 못한다'라는 기존 신념을 수정하기 위해 '내가 못해서 발표를 망쳤다'고 해석했던 사건을 '내가 못해서 망친 것이 아니라 단지 Q&A 대비가 부족했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사건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 신경 회로의 연결을 다른 방향으로 재배선할 수 있다.
그밖에 충분한 수면과 유산소 운동, 명상은 신경 회로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거나 강화하는 데 유리한 생리적 환경을 만들어준다. 따라서 위 세 가지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
독립 사건이란 두 사건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 한 사건의 발생이 다른 사건이 발생할 확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교통사고, 범죄 피해 등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으로 인해 부정적 신념이 형성되었다면, 우선 해당 사건이 독립사건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는 것이 좋다. 만약 독립사건이라면 과거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과도한 일반화를 줄이고 부정적 신념을 약화하는 데 부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낮아진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절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정도로 큰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대체로 낮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미리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절망스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한 번도 그런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처럼. 과거의 사건은 과거의 사건일 뿐,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