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슨 행동을 하든 새삼 놀랍지 않다

타인의 행동에 평정심 갖기

by 탐구인간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정말 완벽하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봤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전 글에서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사전 설정값을 크게 본능, 성격, 신념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성격과 신념을 완벽하게 그대로 재연하여 생각하지 못한다. 성격과 신념을 다른 사람과 완전히 동일하게 바꿀 수 없거니와, 완전히 바꿀 수 있더라도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나와 성별이 다르다면 번식 전략의 측면에서 그 사람의 본능도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나마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을 중심으로 이해해보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조차도 각자의 예측에 따라 다르게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절대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판단할 뿐이다.




몸에 갇힌 예측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예측할 때,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 시스템을 이용해 상대를 흉내 내듯이 시뮬레이션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손을 베인 모습을 봤을 때 실제로 내가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나의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누군가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을 때 실제로 내가 슬플 때 활성화되는 나의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 즉,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나의 신체 감각과 운동 경험을 재현함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거울 신경 체계(Mirror Neuron System)'라고 하며, 시뮬레이션의 범위에는 상대방의 행동뿐만 아니라 감각과 감정도 포함된다.


나의 신체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타인이 어떤 감각과 감정을 느낄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또한, 나와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타인을 보면서 타인도 내가 느끼는 것과 무조건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착각할 위험이 크다.


신념이란 '지금 나 자신과 세계는 어떤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예측하는 사전모형이며, 이를 실제 감각 데이터와 비교하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게 된다. 즉, 타인에 대한 예측을 포함하여 모든 신념이 결국 나의 몸을 통해 들어온 감각 데이터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듯 각자의 몸을 매개로 하는 각자의 모든 예측은 각자의 몸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서로 완전히 같아질 수 없다. 인간이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과도하게 실망할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내가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갖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각자의 몸에 갇혀서 각자의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뿐이므로 타인의 기대와 기준에 연연할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타인에게 나의 기대와 기준을 무조건 강요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몸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인 학습과 상상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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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결국 모두가 유전자 보존, 즉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길로 통한다. 각자의 성격과 신념에 따라 본능이 다양한 방식으로 파생되어 표현되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있어 엄청한 선행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엄청난 악행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누가 무슨 행동을 하든 새삼 놀라울 것이 없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간이다. 스스로의 평정심 유지를 위해 "인간이라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만 해", "어떻게 인간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지?"라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좋다. 인간이니까 자신의 본능 충족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고, 나는 그것을 나의 몸에 갇혀서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물론 인간이 실행 가능한 모든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그것을 무조건 포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판단과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가치'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다만 인간 사회에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타인의 편견을 '이해'하기

"너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르니?", "너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니?"와 같이 다소 편견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통해서 네가 속한 집단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모습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고 알고 있어. 나는 그러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예측하는데, 너는 나의 예측과 달라서 나에게 예측 오차에 대한 놀라움(혹은 불편감)을 주고 있어."


어쩌면 '네가 속한 집단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모습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실제 존재하는 것과 다르게 잘못된 지식을 쌓아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속한 집단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모습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한다'는 내용 자체는 사실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 예측에 대한 근거가 실제로 매우 강력하게 존재하므로 편견을 수정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수가 어떤 특성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과잉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경향에 따르지 않는 소수의 존재도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경우의 수를 잘게 나누어 생각하기보다는 다수의 사례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뇌가 작동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특히 생존과 직결된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편견이 더욱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범들이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면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미리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경계하는 것이다. 해당 특성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살인 사건을 많이 저지를수록(혹은 많이 저질렀다고 알려질수록), 해당 특성을 가진 사람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 감정적으로 크게 느껴질수록 예측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특히 그렇게 형성된 신념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 점점 본인이 믿는 것만을 찾아보면서 신념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이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단지 범죄자와 어떤 특성을 공유한다고 해서 편견 어린 시선을 받게 되는 사람은 당연히 억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편견을 가지게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견을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 과잉 일반화라고 할지라도 미리 경계하면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편견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받거나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편견을 가짐으로써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불이익을 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견을 가지게 된 과정 그 자체를 이해한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찾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편견 그 자체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현상이다. 다만 편견으로 인해 타인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얼마나 잘 조정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타인이 나에게 무심한 편견을 가진다고 해서 지나치게 당황하거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악의 없는 무의식적인 편견은 바꿀 수 있도록 잘 설명하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다만 악의를 가진 편견이나, 악의는 없더라도 고집스럽게 바꾸지 않는 편견에 대해서는,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러려니'하고 내버려 두는 편이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 더 나을 수 있다. 자신의 편견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식하고 있더라도 한 번에 바꾸는 것이 어려운데, 하물며 타인의 편견을 바꾸려고 하는 작업은 더욱 어렵고 복잡한 일인 것이 당연하다. 특히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 살아온 경험 등에 따라 편견을 바꾸는 작업의 난이도는 매우 높아질 수 있다.


자신의 편견으로 인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경우의 수에 대한 탐색이 차단된다는 점에서 손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결국 각자의 편견으로 인해 갖게 되는 이익과 손해 모두 각자의 몫일뿐이다.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타인의 편견을 바꾸려고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바꿀 수 없다면, 최대한 그런 사람과 부딪힐 일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편견이 그 사람에게 어떤 손해를 가져다주는지 헤아려본다면 조금은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크리스티안 케이서스 (2018). 『인간은 서로를 어떻게 공감하는가』(고은미·김잔디 옮김). 바다출판사. (원서 출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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