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전제를 부정하기
무조건 갑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갑과 을로 나누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자연스럽게 갑과 을이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대한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고 싶지만 타인이 먼저 나를 무시하며 을로 만드려고 한다면, 나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갑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갑이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이전 글에서 주요하게 다루었던 것과 같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직접 생산하거나 보유함으로써, 내가 상대방을 바라는 마음보다 상대방이 나를 바라는 마음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의 문제는 타인의 마음에 의존하여 타인이 무엇을 좋아할지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이 바뀌어서 더 이상 내가 가진 것을 원하지 않게 되면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로 을이 되어버릴 수 있다.
갑이 되는 두 번째 방법은 서두에 언급했던 것과 같이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것을 원하는 나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가 상대방을 바라는 마음보다 상대방이 나를 바라는 마음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일종의 무소유 정신을 가지는 전략이다. 가족, 연인, 직장 동료 등 모든 관계에서 결국 더 아쉬운 사람이 을이 된다. 사랑이 더 아쉬운 사람, 인정이 더 아쉬운 사람, 돈이 더 아쉬운 사람, 좋은 평가가 더 아쉬운 사람이 그것을 줄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매달리게 되는 구조이다. 덜 아쉬운 사람은 "너는 나 말고는 대안이 없잖아", "너는 나 아니면 안 되잖아"라고 생각하면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다. 악의를 가진 '갑'은 그러한 관계를 이용해 '을'의 심리를 조종하기도 한다. 을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리고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이 망가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더 아쉬운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을이 갑의 심리 조종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방법은 본인에게 있어 본인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상대방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대안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갑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 만약 대안이 없더라도 스스로를 위해서 갑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다.
자신의 것이 좋은 것이라고, 너는 이것을 욕망해야만 한다고, 이것이 가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설득하는 상대방의 주요한 전략을 미리 예측해 보자. 그리고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보자.
상대방은 결국 거울 신경 체계에 따라 자신의 신체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을 투영하여 타인을 예측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니까 너도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겠지?" 우리는 이 생각을 반박하면 된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매슬로의 '욕구 계층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낮은 단계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그다음 단계의 욕구를 강하게 추구하게 되며, 생리적 욕구(1단계), 안전 욕구(2단계), 애정·소속 욕구(3단계), 존중 욕구(4단계), 자아실현 욕구(5단계)로 단계가 구성된다. 이를 활용하여 상대방의 주요한 설득의 논리를 예측한다면 아래와 같다.
5단계: 자아실현 욕구
대전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
소전제: 너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내가 그렇듯이).
결론: 너는 나의 것을 가져야만 한다.
4단계: 존중 욕구
대전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
소전제: 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사람이다(내가 그렇듯이).
결론: 너는 나의 것을 가져야만 한다.
3단계: 애정·소속 욕구
대전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
소전제: 너는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다(내가 그렇듯이).
결론: 너는 나의 것을 가져야만 한다.
2단계: 안전 욕구
대전제: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
소전제: 너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싶은 사람이다(내가 그렇듯이).
결론: 너는 나의 것을 가져야만 한다.
1단계: 생리적 욕구
대전제: 생물학적 생존과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
소전제: 너는 생물학적 생존과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다(내가 그렇듯이).
결론: 너는 나의 것을 가져야만 한다.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대전제를 부정하거나 소전제를 부정할 수 있다.
우선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대전제를 부정하면 아래와 같다.
"아니, 너 것 말고도 대안은 많아. 나는 얼마든지 다른 대안으로 갈아탈 수 있어."
실제로 대안이 있든 없든, 많든 적든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아쉽지 않다는 듯한 당당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상대방이 갑의 위치에서 함부로 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소전제를 부정하는 것은 욕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법이다.
"아니, 나는 그런 욕구가 안 채워져도 아무 상관없어. 네가 그런 욕구가 있다고 해서 나도 그런 건 아니야"
실제로 자아실현 욕구, 존중 욕구, 애정·소속 욕구는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으므로 충족되지 않더라도 마음을 비운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단, 안전 욕구, 생리적 욕구는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므로 욕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와는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최대한 의연한 태도를 보여주면서 상대방의 예측을 흔들어 더 이상 상대방이 갑으로서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생존을 볼모로 하는 설득은 다른 어떤 설득보다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근래 정치판에서는 해당 전략이 자주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진영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정책이 어떤 식으로 좋은지 설득하는 것보다, 상대 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때 얼마나 위험하며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지에 더 중점을 두고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 진영이 정권을 잡으면 생존을 위협받게 될 것이므로, 우리 진영에 결함이 있더라도 대안이 없으니 반드시 우리 진영을 지지해야만 한다는 식이다. 각 진영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지지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 진영의 지지자를 절대 존중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을 선택의 문제가 아닌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각 진영의 지지자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다른 요소에 가중치를 두고, 무엇이 더 본인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지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위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신념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물론 어떤 진영의 주장은 정말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서 어느 진영이든 지지자들이 생존 위협에 대한 공포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영을 지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정치인과 미디어, 이권단체들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상대편에 대한 공포심을 기반으로 자기편을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자기편에 문제가 있더라도 웬만한 것은 그냥 넘어가게 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정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외 다른 분야에서는 '이게 아니면 큰일 난다'라는 주장이 대체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아니라도 괜찮을 수 있다. 또한 '큰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큰일'이 되는 것이며, '작은 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작은 일'이 될 수 있다. 웬만한 일은 극복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게 아니면 큰일난다'라며 공포심을 조장하는 상대방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