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세뇌된 신념 해체하기
세뇌는 설득이 가장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과 해석을 제한하고 감정과 생각, 행동을 통제함으로써 인간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붕괴시키는 것이 바로 세뇌이다. 보통 종교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종교적 세뇌와 유사한 수준의 가스라이팅을 통해 타인의 심리를 조종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세뇌의 원리를 알고 있어야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심리 조종에 대응할 수 있고, 심리 조종을 당하고 있는 타인을 그로부터 꺼내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자존감이 약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세뇌 대상자로 선택될 위험이 높다. 심리 조종자는 원래부터 심리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에게만 의존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세뇌 작업을 시작한다.
지각과 주의의 설정이 평소와 달라져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상태를 '변성의식'이라고 한다. 변성의식 상태에서 정보를 주입하면 그 정보가 무비판적으로 무의식에 각인될 수 있는데, 세뇌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최면이나 약물을 이용해 변성의식 상태를 유도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다.
감각 데이터를 극도로 제한하여 새로운 정보를 과잉으로 흡수하게 만들거나, 감각 데이터를 과잉으로 제공하면서 뇌를 피곤하게 만들어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도 대표적인 세뇌 기법이며, 이 역시 일종의 변성의식 상태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사전모형, 즉 기존에 형성한 머릿속 예측 모델에 대한 신뢰도보다 새로운 감각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를 훨씬 높게 만드는 것이 주된 전략이다.
감각 데이터가 극도로 제한된 상태에서는 사전모형에 대한 신뢰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새로운 정보를 제공받게 되면 뇌는 이를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감각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피로해진 신경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반대로 감각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심리 조종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반대로 감각 데이터가 과잉으로 제공되는 상태에서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새로운 감각 데이터를 사전모형과 비교하면서 예측 오차가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신경계가 과부하되면서 감각 처리가 아예 억제되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이때 심리 조종자가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게 되면 대상자는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신경 피로로 인한 무감각 상태는 '초역설적 단계'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개에게 먹이를 제공하기 전에 종소리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한 실험이다. 원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종소리가 먹이와 연결되면서 침 흘리기라는 동일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파블로프의 실험실은 어느 날 홍수에 잠기게 되었다. 기존에 훈련되었던 개들은 홍수로 인해 강한 자극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는데, 신기한 것은 사건 이후 개들에게 종소리를 들려주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약한 종소리에는 반응하지만 강한 종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 역설적인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이러한 역설적 상태를 '초역설적 단계'라고 한다.
초역설적 단계가 발생하는 이유는 강한 자극에 대해 신경계가 과부하되면서 보호적인 억제 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신경계가 피로해져 과도한 자극을 차단하는 방어 모드로 진입한 것이다. 약한 자극에는 아직 처리할 여력이 있어서 반응하지만, 강한 자극에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형성했던 신념과 우선순위의 체계가 흔들리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심리 조종자가 부드러운 어조나 일관된 메시지, 단순한 문장, 반복된 구호 등을 사용하여 약한 자극으로서의 정보를 주입하면 대상자는 그것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진실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심리 조종자는 대상자가 초역설적 단계로 진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수면을 제한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후 피로한 상태에서 제공되는 부드러운 위로나 달콤한 메시지는 머릿속에서 여과 없이 진실이 되어버린다.
우리의 뇌는 항상 기존에 형성한 사전모형으로 세상을 예측하고, 새롭게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와의 차이, 즉 예측 오차를 줄이려고 한다. 세뇌 환경은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사상의 주입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신념을 형성하게 하고, 해당 신념에 대해 과하게 확신하도록 만들면서 그것과 어긋나는 증거의 신뢰도는 낮추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세뇌된 신념을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그것이 매우 약하게만 반영되어 신념이 잘 바뀌지 않게 된다.
또한 세뇌 환경에서는 기존의 신념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 공포, 불안과 같은 각성도 높은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높은 각성 상태에서는 위협적인 단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데, 이때 심리 조종자가 '나 또는 우리 조직을 벗어나면 위험하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파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새로운 신념으로서 강화하게 된다.
심리 조종자의 말을 잘 들었을 때, 간헐적으로 보상을 제공하면서 황홀감, 감동과 같은 각성도 높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면 신념은 더욱 강화된다. 매번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제공함으로써 예측을 어렵게 하면, 이번에는 보상을 받지 못했더라도 다음에는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심리 조종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신경가소성을 활용하여 신념 수정하기'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세뇌와 탈세뇌 기법에서는 보통 '앵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앵커란 특정 주제, 상황에 대한 판단과 해석의 기준점을 의미한다. 사전모형이 국소화된 버전이 곧 앵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외부는 위험하다'와 같이 심리 조종자들이 제시하는 기본 가정이 앵커이다. '트리거'는 앵커를 일으키는 조건으로, 여기에서는 '우리 조직을 떠나서 외부로 가는 것'이 곧 트리거가 된다. 세뇌는 현실과 맞지 않는 트리거와 앵커를 새롭게 연결시키고 강화하는 것이며, 탈세뇌는 그러한 트리거와 앵커 간의 연결 고리를 끊고 검증 가능한 새로운 연결 고리로 바꾸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탈세뇌의 출발점은 우선 세뇌를 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머릿속 앵커의 존재를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공포감을 느끼지?'라고 스스로 물을 수 있다면 이미 연결 고리의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무의식에 숨겨져 있던 앵커의 존재를 의식화하는 것만으로도 앵커와 트리거의 연결 고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기존 앵커를 무력화하거나 기존 앵커를 다른 앵커로 대체하는 방법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트리거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공포감을 줄이는 훈련을 하거나, '비판은 곧 배신'이라는 기존 앵커에 '비판은 곧 개선의 신호'와 같은 다른 앵커를 둠으로써 공포감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환경을 바꾸는 일은 생각을 바꾸는 것만큼 중요하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만 만나게 되면 기존 사전모형을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같은 일에 대해서 시간과 장소를 바꾸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해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그동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반대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가 기존 사전모형과 다른 예측 오차를 만들어 주고, 그 차이만큼 사전모형은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탈세뇌 과정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각성도를 잠시 낮추기 위해 느린 호흡과 명상을 활용할 수 있다. 각성도가 과도하게 높은 상태에서는 빠르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위협 단서에 편향된 학습을 하게 되는데, 각성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안정화시킴으로써 편향되지 않은 실제 근거 중심의 학습을 할 수 있다.
* 참고 문헌
오카다 다카시 (2013).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들』(황선종 옮김). 어크로스.
지영근 (2020). 『신천지 세뇌 방식과 탈세』(최호영 옮김). 기독교포털뉴스.